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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 이루어졌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06 조회수709 추천수4 반대(0) 신고

 

 

<다 이루어졌다.>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께서 “나다.” 하실 때, 그들은 땅에 넘어졌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진리가 무엇이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넘겨받았다.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그분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 속옷도 가져갔는데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그날은 유다인들의 준비일이었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 (요한 18,1-19,42)



  요한복음서에 의한 예수님의 수난기는 오열과 슬픔을 가슴에 묻어 두고 절제된 표현으로 영광을 향해 걸어가시는 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보여주고 싶은 가르침을 낱낱이 진술하고, 한 점 후회 없이 떠나가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죽음의 고통이 상세하게 표현된 공관 복음서와 달리 오직 “목마르다.”라는 말씀과 신포도주를 드신 것으로만 간결하게 표현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절제된 비장감이 더 배어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체포 때부터 묻히실 때까지 7개 장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배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1)체포, 2)안나스의 저택, 3)로마 총독의 재판, 4)갈바리아, 5)어머니와 제자 및 완성, 6)물과 피 및 어린양, 7)묻히심입니다.


  매 장면에서 의연하고 당당하신 자세가 드러납니다. 특히 체포 장면에서 당신을 “나다.(에고 에이미)”라는 관용구로 당당하게 선언하는 모습이 3회나 계속 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수제자인 베드로는 3회나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나다.(에고 에이미)”라는 선언을 하시는 장면이 요한복음 전체에서 여러 번 나타나는 것은 탈출기 3,14절 하느님의 명칭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과 동등한 일을 수행하신다는 자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 수난의 길을 스스로 나서시고, 제자들을 보호하시는 분으로 그린 것입니다.


  로마 총독인 빌라도의 재판 장면에서도 요한복음저자의 신학적 의도가 배어나옵니다. 그 당시 지상의 황제 대리인이 예수를 임금으로 선언하게 만듭니다. 그것도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죽음의 길이 임금으로 등극하시러 오르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재판 장면도 예수님의 모습은 당당하나 빌라도는 당황스럽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자, 두려워하는 자(19,8절)로 그리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모두 7차례나 관저를 들락날락 합니다. 또 총독인 그가 유대인들의 협박에 비굴하게 굴복하는 모습(16절)도 보여줍니다. 진리를 앞에 두고도 알아 보지 못하는 자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누구와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19,23절, 성모님께서 손수 지으셨을 예수님의 속옷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입니다. 여기서 ‘위’라고 번역된 그리스 단어 ‘아노텐’은 ‘하늘로부터’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즉 하늘로부터 하나로 지어진 교회는 찢지 말고 보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맡은 책임자도 주사위로 던져 정해야 합니다.


  숨을 거두시기 전에 어머니와 요한 제자에게 유언을 하십니다. 남은 사람들을 배려하고 교회를 염려하는 말씀입니다.

  먼저 어머니께 제자 요한을 맡기십니다. 그 뜻은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을 더 크게 보신 것입니다. 홀로 남으실 어머니를 걱정하기보다, 어머니의 크신 믿음에 제자를 맡기시는 것입니다. 요한 제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성장하고 바른 길을 걸어 갈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이런 점에서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오신 길이 이제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한 점 후회도 부족함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과연 예수님 말고 그 누가  인생 마지막 길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시고 “머리를 떨어뜨리시며 영을 내어주셨습니다.”(19,30절) 이 표현마저도 능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수동적인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결정하시는 능동적인 모습입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당신의 거룩한 영을 온 세상에 내어주십니다.

  

  아멘. 아멘.

  

 

Agnus D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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