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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씨 / 류해욱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06 조회수751 추천수6 반대(0) 신고

   요한 신부와 요셉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발을 씻어준다는 이미지가 담고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섬김, 받아들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용서가 포함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제 나름대로 이렇게 바꾸어 알아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용서하여라.”

  오늘 요한이라는 어느 신부가 쓴 요셉이라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요셉은 요한 신부가 신학생으로써 논산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있을 때 만나게 된 친구입니다. 훈련소를 거의 마칠 무렵에 요한 신학생은 다리에 생긴 상처로 의무대 병실에 입원하게 되었답니다.

 

병실을 맡은 상병하나가 밥을 가져다주었는데 손가락에 묵주반지를 끼고 있어 ‘신자구나’ 생각했지만 훈련병 처지라 먼저 말도 못 걸었는데 자기가 성호를 긋고 식사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그가 먼저 인사를 하면서 서로 알게 되어 그 후 그들은 훈련병과 고참의 관계보다는 신학생과 교우사병의 관계로 이어져서 서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답니다.

  몇 년 후 친구요셉은 동갑내기 마리아와 결혼을 했고 이듬해에 자기는 사제로 서품되었답니다. 서품 받은 첫 해에 요셉과 마리아는 여름 청년 캠프를 하던 요한 신부에게 휴가를 와서 결혼을 앞둔 청년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하룻밤을 함께 보냈고 그리고 불과 며칠 후에 요한 신부는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답니다.

 

요셉의 가게에 당시 서울을 누비고 다니던 삼인조 강도가 들어 요셉이 그들과의 격투 끝에 심하게 다쳐서 죽음 직전에 있다는 소식이었답니다. 요한 신부가 친구 요셉을 찾아가 보니 그는 거의 절명 상태였고 분노한 탓인지 격투를 했던 오른손은 주먹을 쥔 채로 계속 흔들고 있었답니다.

 

요셉의 부모님과 그의 아내 마리아는 오히려 비통해하는 요한신부를 위로해 주면서 ‘우리가 할일은 다 했으니 기도해 주세요.’ 라고 부탁했답니다. 요한 신부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병자성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본당의 젊은이들과 함께 요셉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육 개월 후 언어 장애와 오른손의 불편함을 빼고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의 요셉을 만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다시 육 개월 쯤 뒤에 저녁뉴스에서 바로 요셉의 가게를 털었던, 요셉을 거의 절명 상태로 만들었던 범인 중의 한 사람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요셉이 다쳐 누워 있을 때보다 더 큰 걱정이 되었답니다. 범인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요셉을 다시 아프게나 하지 않을까 라는 염려 때문에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튿날 요셉이 전화를 해 주었답니다.

 

여전히 뇌손상 때문에 서투른 말로 ‘범인…….을 만나고 왔어……. 그런데……. 이상해. 보는 순간 그 이전의 ……. 마음, 모두 사라지고……. 용서합니다.……. 고 말했어.…….’라고 했답니다.

 

요한 신부는 괜찮은지 물었고 그는 진정으로 괜찮다는 얘기를 반복했답니다. 사제인 자기도 정말 하기 힘든 말을 그는 뇌를 다쳐 답답하고 힘겨워 하는 모습으로 ‘용서합니다.’ 고 말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 요한신부는 요셉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요셉의 아내가 받아쓴 편지였습니다. 거기 요셉이 범인에게 받은 편지 복사본이 동봉되어 있었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청난 해를 주었는데도 오히려 내게 위로와 용서를 주시다니요. 면회까지 와주시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능력하지만 하느님께 당신의 가정과 건강 행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좀더 일찍 하느님을 알았더라면……. 나로 인해 얼마나 어려우신가요?”


  요셉은 요한신부 자기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를 위해 자주 면회를 가 주었고 자기를 부끄럽게 할 요량인 것처럼 그의 세례 소식을 전해 주었답니다. 요셉 그가 바로 범인의 대부가 되었고 대자도 대부의 본명을 따서 요셉으로 세례명을 정하였답니다.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요셉은 다시 ‘그’를 위해 탄원서를 각계에 내었습니다.  ‘그’는 추기경님으로부터 견진성사도 받았습니다. 요한신부는 오히려 고통을 당한 이들보다 더 분개했던 자기의 경솔함을 부끄러워 할 뿐이라고 고백했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고 요셉이라는 분이 자기의 뇌를 다치게 했고 많은 것을 앗아간 범인을 용서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을 생각하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요셉은 오늘 우리가 복음에서 들은 예수님의 행위를, 그 행위의 의미를 끌어 안아들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용서할 수 있는 힘은 전적으로 은총입니다.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그분의 힘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그분의 힘이 우리에게 용서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 분이 주시는 힘이 내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요셉이라는 분이 범인 요셉을 용서했다는 대목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고 솔직히 고백하면 이 강론을 위해 이야기를 옮겨 적으면서도 눈물을 찔끔 거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좀더 깊이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요셉 씨가 그 범인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지만 그 과정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식불명으로 암흑의 터널을 헤매다가 깨어나면서 요셉 씨는 자기에게 일어난 이 사건을 계속해서 반추했을 것입니다.


  “주님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저와 아내 마리아 그리고 아이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왜 이런 고통을 우리에게  주십니까?”


  이런 물음으로 끝없이 계속되는 또 다른 암흑의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범인에 대해 생각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범인에 대한 분노로 주먹을 부를 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병상에서 예수님을 새롭게 체험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 ‘아버지 이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라고 하시며 자기를 때리고 모욕하고 못 박는 사람들을 용서하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났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니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괴로워 하셨다는 것이 자기가 괴로워하며 보낸 시간들을 생각하며 참으로 커다란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요셉 씨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자기를 배반하게 될 베드로, 유다에게 까지도 무릎  꿇고 발을 씻겨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알 때 그분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행하신 것을 따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셉 씨는 예수님의 행동을 따라 자기를 쳤던 범인의 발을 씻겨 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예수님의 행동을 깊이 바라보면서 그 행동을 따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도 무릎을 꿇고 그 사람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성목요일에 행한 세족례의 참 의미일 것입니다.


  류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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