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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완전한 고통 (나영훈 안토니오 신부님 )
작성자오상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07 조회수526 추천수1 반대(0) 신고
4월 6일(주님 수난 예식) : 완전한 고통
 
  연극이나 소설에서 가장 긴장되고 가장 극적인 장면을 

클라이막스라고 부릅니다. 

이 클라이막스는 인물들 간의 대립이 가장 최고조로 달해 

잠시라도 눈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성주간에 있어서 클라이막스는 

주님께서 수난하시고 돌아가신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담고 있습니다.

해결할 수 없었던,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던 

우리의 수많은 고통들의 의미가 비로소 십자가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에집트를 탈출한 백성들이 하느님을 불신하여 죽을 뻔 했을 때 

불뱀이 달린 것을 보고 그들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신약에 있어서 그 사건의 의미는 더욱 완전해지고 분명해져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모든 인류의 문제들이 극복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스라엘의 작은 한 고을에서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서 시공간을 초월한 모든 백성들이 

죽음을 뛰어넘어 부활의 빛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의 중심에 계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분의 겸손과 순종으로 인해 이 모든 일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고통을 스스로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고통이라도 피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일 것입니다.

하물며 십자가의 고통이라면 더더군다나 피하고 싶습니다.


믿어왔던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군사들의 조롱을 받고 옷은 찢겨지고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는 수모

매 맞고 가시관의 가시가 머리를 뚫는 아픔

세 번이나 놓칠 만큼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마침내 그 위에서 피와 물이 다 흘러내릴 때까지 

죽음을 처절하게 느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고통을 예수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피땀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보통의 번민과 걱정으로서는 이러한 피땀을 흘릴 수가 없습니다.

그 고통이 미리 알고 그 아픔이 극에 달아 

머릿속의 실핏줄은 터지고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견디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십자가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십니다.

그것은 사랑을 인류에게 보여주고자 하신 거룩한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이유 없는 고통이 아닙니다.

이유 있는 고통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라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이유로 
  
인간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자 스스로 받아들인 고통과 같은 고통입니다.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셨는데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에 우리의 고통을 더한다면 

우리의 고통은 승화되고 거룩하게 되어 

우리도 신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완전한 죽음이 이루어질 때 완전한 부활은 우리에게서 시작될 것입니다.

그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의 고통을 주님께 완전히 맡기고 새로운 부활의 삶을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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