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미리읽는 성서묵상 [부활대축일]& 참다운 삶을 위한 훈화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07 조회수819 추천수3 반대(0) 신고
★★★

    ◈ 오늘 복음 생략 .....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를 연구한 학자 로 유명합니다. 그는 우주 만물은 반드시 시작의 순간이 있을 것이 라는 가정 아래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예상대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을 만들어 내는 첫 원인을 밝히려면 그 어떤 에너지의 원천을 먼저 밝혀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호킹은 결국 시간의 첫 기원에 대한 증명은 간단한 것일 수도 있고, 결코 풀릴 것 같지 않은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그는 신을 믿는다면 이 시간의 역사는 너무도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나, 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엄청난 수수께끼 로 남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일상 적인 사실은 구체적인 증거를 통하여 밝혀지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근원적이며 우주적인 사실은 증거를 통한 인식의 영역 이라기보다는 믿음을 통한 신앙의 영역 안에서 그 진실이 밝혀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일차적으로 사실에 대한 증거로 선포되는 실제적인 체험이지만, 동시에 진실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신앙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은 주님께서 육신의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실제적 부활에 대한 기쁨인 동시에, 죄의 죽음을 이기시고 구원의 생명을 되살려 주셨다는 영적 부활에 대한 기쁜 소식입니다.

    ◈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부활선물> 부활성야를 잘 지내셨는지요? 오늘 저녁 저희 수도원에서도 수사님들, 아이들, 후원자들과 함께 하는 성대한 부활성야 미사를 드렸습니다. 빛의 예식 때, 그리고 세례 갱신 예식 때 제대 위에서 내려다보니 촛불을 들고 서있는 저희 아이들의 얼굴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 지요? 다들 한 송이 화사한 꽃과 같았습니다. 꽃도 그냥 꽃이 아니라 생명력이 펄펄 넘치는 꽃, 영원히 시들지 않을 것 같은 예쁜 꽃으로 보였습니다. 다시 한번 부활하신 예수님의 평화와 은총이 모든 분들 가정에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여러 소중한 체험을 한 날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입원해 계시는 한 신부님 병문안을 갔었지요. 병문안을 마치고 엘리베이터가 만원 이길래 운동 삼아 계단으로 내려 오고 있었는데, 내려오는 계단 한 가운데 한 어머니가 앉아 계셨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태가 심각한 듯 했습니다.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흐느끼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상심했으면,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저렇게 울고 계실까 하는 마음에 저 역시 마음이 아파 왔습니다. 오늘 부활 대축일을 맞아 투병 중에 있는 분들, 그리고 그 환자들로 인해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모든 분들이 오늘 하루라고 주님의 은총으로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후에는 황사현상으로 출가(出家)했던 두 아이를 우여곡절 끝에 데려 왔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느님께서 두 아이를 저희 공동체에 부활선물로 주신 듯했습니다. 저녁에는 부활 때면 언제나 잊지 않고 찾아오는 이 곳 출신 기숙생 을 만났습니다. 꼬마 때 와서 거의 10년 이상 저희 집에 살다가 취직 해서 나간 친구인데, 얼마나 야무진지 모릅니다. 얼마나 자기 앞가림 을 잘 하는지요? 이 야무진 친구 역시 또 하나의 부활선물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신 모든 선물에 깊이 감사 드리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부활을 축하 드리며 이 나라, 모든 공동체 가정에 주님 부활의 기쁨이 메아리쳐지길 기원합니다..
◈ 두올 묵상 무덤과 부활 ◈
        

    ◈지은이 : 두올 묵상집 <보나와 함께하는 묵상> : † 빛의 신비 : 주님의 부활 묵상 우리는 어두운 밤에 촛불을 밝혀 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1,4)는 요한복음서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약한 촛불 한 자루를 우리는 손에 들고, 우리 앞에 가냘프게 그러나 확실하게 밝혀진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라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부활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님을 하느님이 당신 안에 살려 놓으셨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부활은 몇 사람을 놀라게 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아버지의 일을 죽기까지 실천한 한 생명을 하느님이 당신 안에 거두어들이셨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 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분을 거두어 당신 안에 살려 놓으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하느님과 다른 하느님을 가르친 다고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였습니다. 유대인 군중은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 이스라엘의 국권을 회복하여 만방을 다스리게 하는, 화려하고 막강한 메시아가 아니라고 그들 지도자들의 미움과 죽임에 동조하였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로마 제국이 식민지 팔레스티나를 통치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예수라는 인물이라 판단하여, 유대교 기득권 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음 앞에 그분을 버려 두고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쳤던 하느님은 없다고, 사람들은 그분을 비웃었고 조롱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불렀지만, 하느님은 침묵을 깨고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큰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 당하는 죄수의 한 사람이 되어, 그분은 고독 가운데 죽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기옵니다”(루가 23,46). 그리고 그분은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하느님만이 당신의 미래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그분은 죽어 가셨습니다. 하느님은 과연 그분의 미래로 살아 계셨습니다. 인간이면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심연을 넘어서 예수님은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외면하지 못하는 죽음입니다. 이 세상을 등지고 외계인(外界人)이 되어서 살 수도 없고, 이 세상과 담을 쌓고 천사와 같이 살 수도 없습니다. 이 세상을 버렸노라고 말하기에는 이 세상에 너무나 얽혀서 살아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부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의 촛불이 들려졌습니다. 우리는 세례 받을 때 이 촛불을 받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빛으로 살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장차 죽으면 사람들이 우리의 주검 앞에 제일 먼저 촛불 하나를 밝혀 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을 좇아가라는 말입니다. 지상적 인간 조건을 하나도 외면하지 못하고, 우리는 땅에 붙어서 삽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듯이, 울며 웃으며 우리는 땅에서 삽니다. 그러나 오늘 밤 우리 손에는 촛불 한 자루가 들려 있습니다. 그냥 웃고 그냥 울며 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우리의 삶 안에 밝히고 살겠다는 말입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복음서의 이 말씀을 고백하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명, 그분이 실천하신 생명이 하느님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대의 죄는 용서 받았습니다”라고 하시던 그분의 말씀이 하느님의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용서하고 살리시는 하느님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죄인이라 낙인찍은 여인에게도(루가 7,48), 죄 때문에 하느님이 버리셨다고 믿던 중풍병자에게도(마르 2,5),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악하기에 하느님도 악하다고 상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심술궂기에 하느님도 심술궂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선하고, 불쌍히 여기신다고 가르치면서, 그 선하심과 그 불쌍히 여기심을 실천하셨습니다.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지혜를 자랑하지도 않으셨고, 당신의 권위를 과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과대 포장하고 과시하면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당신 스스로에 대해 언급하신, 유일한 말씀은 “나는 그대들 가운데 섬기는 사람으로 있습니다”(루가 22,27)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서, 측은히 여겨서 섬기신 분이었습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이제 죽음은 절망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미움도, 우리의 실패도, 모든 사람이 우리를 외면하기에 겪는 우리의 고독도, 이제 우리에게는 절망이 아닙니다.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면, 그런 것들 안에 새로운 생명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겪으셨던 미움이고, 실패고, 고독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그것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와 함께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6,8) 길입니다. 그런 것을 넘어서 예수님은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만물이 뿌리박은 이 땅, 우리가 장차 묻힐 이 땅도, 이제 그리스도의 빛을 간직하고 있도록 했다는 고백입니다. 용서가 실천되는 땅에 그 빛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불행을 퇴치하는 섬김이 실천되는 땅에 그 빛이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땅에 그 빛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흔적들을 간직한 땅입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이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은 사라지고 새로운 삶이 발생합니다. 미움이 사라지고 사랑이 발생합니다. 자기만이 소중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발생합니다. 실패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고, 고독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함께 계시는 순간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안에 스며들고 그 빛으로 새로운 실천이 발생하면서 보이는 새로움입니다. 어둠의 역사 안에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지금부터 촛불을 밝혀 들고 우리가 세례 때 했던 약속을 새롭게 합시다. 우리 안에 또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안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살아 계실 것을 기도 드립시다. 우리가 사는 역사의 어둠 안에 그분이 빛으로 함께 계실 것을 기도 드립시다............ [말씀자료 : 서공석 신부/ 편집 : 두올묵상팀]

    ◈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신앙의 꽃이 며 희망의 절정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사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우리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영원한 삶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주님 혼자만의 부활이 아니라 우리도 모두 부활할 수 있다는 징표로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여 주신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부활을 통해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이겨내신 것은 우리도 죄와 죽음을 이겨내고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주님을 따르려고 다짐한 우리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사건이며 징표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측근이었던 사도들조차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았던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상징적인 부활이 아니라 실제적인 부활을 하셔서 제자들과 음식을 나누고 십자가에서 입으신 상처까지도 생생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제자들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부활 축제기간 중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기 도 주 님, 주님의 부활을 그리워하며 저도 부활의 길로 나아가리라 다짐하나이다. 주님께서 세상에서의 사명을 이루셨듯이 제게 맡기신 사명을 충실히 해내고, 주님께서 부활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이 주님을 따르기 위해 십자가를 지겠나이다. 주 님, 주님께서 몸소 부활하셨으니 저도 부활의 삶을 살리라 믿나이다. 아멘.
★ 참다운 삶을 위한 훈화 ★

    남을 무시하지 말라 태공이 말하였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여 남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며, 자기가 크다고 생각해서 작은 사람을 무시해서도 안되고, 용기를 믿고 적을 가볍게 대해서도 안 된다. " 힘으로 남을 이기려 하지 말라 맹자가 말하였다. " 힘으로 남을 이기려 하면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지만 진심으로 복종한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해서이고, 덕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려 하면 마음 속으로 기뻐서 진심으로 복종하게 된다. " 남을 해치고자 하면 자신이 먼저 다친다 태공이 말하였다. "남을 판단하고자 하면 먼저 자기부터 헤아려 봐라. 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자신을 해치게 되니, 피를 머금었다가 남에게 뿜으면 먼저 자신의 입부터 더러워진다. " 나를 칭찬만 하는 사람을 조심해라 공자가 말하였다. " 나를 꾸짖어 말하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요, 나를 칭찬만 하는 사람은 나를 해하는 사람이다. "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 공자가 말하였다. "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한테서는 그 선함을 배우고, 악한 사람한테서는 그의 잘못을 보고 자신을 반성할 수 있다. " 원수를 만들지 말라 경행록 에 이런 말이 있다. " 남과 원수를 맺는 것은 재앙을 심는 것이고, 선을 버려 두고 행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 함부로 남의 말을 하지 말라 노자가 말하였다. " 남이 알아서는 안 될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고, 남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게 하려면 처음부터 말을 안 하는 것이 제일 좋다. " 스스로 자랑하지 말라 군자가 말하였다. "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분별있게 판단하지 못하고, 스스로 만족해 하는 사람은 드러나지 않으며,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공로가 없어지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 옮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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