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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고 믿었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08 조회수544 추천수2 반대(0) 신고

 

 

 

<보고 믿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요한 20,1-9)


  요한복음 저자는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을 목격하기 전에 빈 무덤 이야기를 먼저 적어 놓았습니다.

  루카복음에서는 몇 명의 여인들이 향료와 향유를 갖고 달려간 것으로 써있으나, 여기서는 막달라 마리아만 대표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대표 격인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그 빈 무덤 소식을 전해 듣고 확인하러 바로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그 이유는 초기 공동체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시비를 거는 유대인들에게 반론을 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시신을 그 제자들이 감추었거나, 무덤지기가 옮겨 놓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품었습니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 예수님 부활 전에 이미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레위기에 두 사람이 증언하면 믿을 수 있다고 쓰여 있는 대로 두 사도들이 ‘빈 무덤’이 사실이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부활이 언급된 대목은 모두 이스라엘 민족들을 향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이사 26,19)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호세 6,2)

  이 의미는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대로 그들에게 내린 형벌을 돌이키시고 원상으로 복귀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의 확실성과 신속성을 보증하는 구절입니다.

  마카베오기에 와서야 의인들의 부활이 언급됩니다. 그것도 미래에 일어날 희망으로 언급될 뿐이었습니다. 부활하신 분이 지상에서 활보하거나 대화하고 음식을 먹는 모습으로 그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에서 표현하는 부활과 매우 다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적인 현현이 아닙니다. 그분은 살과 피를 지닌 존재로 부활하셨습니다.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지녔으나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존재 양태로 부활하셨습니다. 특히 빈 무덤이야기는 예수님의 부활이 육신을 포함하게 되는 출발점입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부활이 민족적 부활 사건에서 출발하여 억울하게 죽은 의인들이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그 쌓인 원망을 풀게 된다는 신앙에 이르렀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새 이스라엘의 왕으로, 재림하실 분으로, 만유의 주님으로 등극하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인간의 죄를 없애시어 하느님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분이 되셨습니다. 죽음의 세력을 이기시어 인간이 더 이상 죽음의 음울한 기운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반갑게 받아들일 수 있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는 '혁명적 사건'에서 인간의 삶을 재탄생시키는 '보편적 사건'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의 삶은 어떤 방면으로 살펴  보아도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부활 이전에는 무엇이든 가진 자, 여유 있는 자, 힘 있는 자가 삶의 의미를 독점하였다면, 이제는  인간이 겪는 슬픔, 고통, 질병, 고독, 소외, 불행, 불안, 가난, 배고픔이 모두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빈 무덤은 썩어 없어지지 않는 생명의 부활을 위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파노라마처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지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결심하게 만들어 주는 관문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거기서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설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줍니다.

  희망과 용기는 먼저 우리를 다독거려 주어 그 힘을 새로 얻은 자는 전 인류와 함께 부활의 희망을 나눌 수 있게 만듭니다. 자기가 새 생명의 희망을 받은 것이 예수님의 부활 공로로 공짜로 얻었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누구나 공짜로 받은 것을 공짜로 나누어 주게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을 두 사도들은 빈 무덤을 보고 믿게 된 것입니다. 아멘. 아멘.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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