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한 시가 지나자 여의도 문화마당은 ‘고 정용품 동지 추모와 쌀 협상 국회 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전국에서 올라온 농민 형제들로 가득 찼다. 만 명 남짓 모인 것 같았다. 농민 형제들이 늘어날수록 전투경찰(전경) 수도 늘어나는 것 같았다. 노래와 구호가 늦가을 하늘을 울리고 노란 은행잎이 농민 형제들의 서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에 날렸다. 1부 ‘고 정용품 농민 형제 추모식’과 2부 행사가 끝나고, 몇몇 젊은 농민 형제들이 전경들과 실랑이를 벌였고 전경들은 물대포를 마구 쏘아댔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밀고 당기며 마치 전쟁터처럼 살벌해져 갔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우리 겨레의 아들’인 전경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럼 누가 죄인이란 말인가? 부시란 말인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란 말인가? 권력이란 말인가? 자본이란 말인가? 아니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곁을 늙은 농민이 피범벅이 되어 비틀거리며 지나갔다. 얼른 가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아주고 돌아서는데 ‘퍽’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잠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리고 얼마 뒤, 누군가 내 팔짱을 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비켜주세요, 부상잡니다.
자, 자, 조금씩 비켜주세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 머리에서 얼굴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제야 ‘퍽’ 소리가 내 머리에 방패가 찍히는 소리였다는 것을 알았고, 나를 살리기 위해 팔짱을 끼고 달린 사람이 서울 우리농에서 일하는 맹주형 아우란 것도 알았다. 10분쯤 달렸을까? 마침 큰길 신호등에 걸린 경찰차를 잡아타고 닿은 곳이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이었다. 20분쯤 지나자 응급실은 부상당한 농민 형제들이 밀어닥쳐 말 그대로 ‘피바다’였다. 내 머리가 얼마나 찢어졌는지 속옷까지 피에 젖어 있었고, 아무리 수건으로 눌러도 피는 멈출 줄 몰랐다.
그래도 ‘살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때 문득 고난을 겪으신 예수님이 ‘젊고 건강한 네가 다쳤으니 얼마나 큰 다행이냐?’ 하면서 내 어깨를 툭툭 치셨다. ‘그렇구나. 늙은 농민이 맞았더라면 돌아가실 수도 있었겠지. 내가 맞아서 얼마나 다행한 일이야.’ 생각하며 사람 일은 순간을 모르니 늘 몸과 마음을 비워두어야겠구나 싶었다. 그날이 2005년 11월 15일이었다.
서정홍(농부시인 · 마산교구 삼가공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