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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와서 아침을 먹어라.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3 조회수895 추천수8 반대(0) 신고

 

 

<와서 아침을 먹어라>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주님이십니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그 배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요한 21,1-14)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그리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들은 이제 부활의 축제에서 돌아와 일상의 삶 속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어부이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인 갈릴래아 호숫가에 돌아가 여느 때처럼 고기를 잡으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주님의 부활 사건이 3회에 걸쳐 나타납니다. 처음 막달라 마리아에게, 토마에게, 그리고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납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사랑의 완성’을, 토마에게는 ‘신앙의 완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일상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일상은 우리에게 지극히 평범하게 다가옵니다. 그날이 그날 같고 별다른 소득 없이 흘러만 갑니다. 어떤 때는 암울한 모습으로 다가와 아무런 보람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사랑하고, 늙어가며, 병들고 그리고 죽음을 향해 달음질칩니다. 그 와중에 밀려오는 고통과 불행 속에서 신음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보입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렛 1,2)라는 외침이 우리의 가슴을 송곳처럼 찌르며, 알싸하게 비집고 들어옵니다.


  이처럼 일상은 거룩함이 소실된 곳이며, 용열하고 추함이 더 잘 드러나는 곳입니다. 실제로 하루를 반성해보면 과연 주님을 묵상할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모처럼 거룩한 피정에 참석했더라도 잠자고, 씻고, 먹고, 마시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만 주님께 할애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분심 들어 집중하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그 피정에서 돌아와 거룩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가도 곧 일상 속으로 파묻혀 버립니다. 그리곤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그 일상에서 벗어나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늘려나가는 것이 우리에겐 바로 십자가의 수난입니다. 일상에서 자기의 꿈을 실현하도록 노력하며, 돈벌이도 해야 하고, 친구와도 만나고, 잠도 자야하고, 공부도 취미생활도 해야 하는 가운데 성당에도 나가고, 이웃에게 봉사하며, 성경 공부 등등 주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인가 희생을 무릅써야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과 이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의 그물질은 자주 아무 소득 없이 끝이 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주님은 언제나 우리 가운데에 와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간혹 들리는 주님의 목소리를 따라 그물질을 해보면 큰 소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얼 잡았느냐?’물으실 때 쓰인 그리스어는 ‘프로스파기온’인데 그 뜻은 일상에서 늘 먹는 것이 아니라 곁들여 먹는 것, 삶의 맛을 더해 주는 것, 참된 생명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것을 잡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제 몸을 호수에 던집니다. 그 모습은 자신을 버리는 투신을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위대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주님 이름만 들어도 무작정 뛰어드는 투신을 했습니다.


  뭍에 올라와 보니 벌써 주님께서 숯불을 피워 놓고 물고기를 굽고 계시며 빵을 마련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이미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오라고 주문하십니다.  이 장면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한 아이가 바친 것으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빵의 기적”을 상기시켜 줍니다.


  주님의 명령과 우리의 노력이 어우러진 소득을 봉헌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제 힘으로 얻은 것인 줄로 알고 감추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잡게 해주셨으니 공동체에 내어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봉헌입니다.


  참된 나눔이 거행되는 곳에서는 21,12절처럼 그 누구도 예수님께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주님의 현존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자 자신의 삶을 투신하는 사람에겐 허무하게만 보였던 삶이 거룩하게 변화 됩니다. 덧없게만 여겨졌던 일상이 예수님께서 들어오심으로 해서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이 험난한 인생이 더 이상 苦海만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길이 됩니다. 헛되게만 보였던 일상이 진리로 향하는 길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부활의 삶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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