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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4 조회수1,329 추천수1 반대(0) 신고
4월15일 야고보 아저씨의 샬롬묵상--평화가 너희와 함께


4월15일 부활 제2주일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요한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든지 누구나 그것으로부터 방어태세를 갖습니다. 문을 잠그고 아무도 들이지 않게 하는 방법도 있고, 높은 담을 넘어 들어오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장애를 설치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결국 그 장애를 뚫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서양에 '아무리 성벽이 두꺼워도 깨지게 되어있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느끼는 두려움에는 장벽이 없는 것처럼 지금 제자들은 마음으로 느끼는 두려움에 처해있습니다. 몸으로 받을 위험을 마음으로 더욱 크게 느끼고 있는데 이 두려움을 물리쳐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이며, 평화의 원천이신 주님께서 함께 하실 때만이 두려움을 멀리 쫓을 수 있습니다. 두려울 때 주님 함께 계시고 그 주님은 부활하신 분이시니 제자들은 뛸 듯이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 항상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부활하신 그 분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아 돌아가시게 만드는 두려움입니다.
 

  아버지께서 주님을 우리 사이에 보내심과 같이 우리를 주님은 보내십니다. 우리를 악으로 몰아넣으며 죽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세상에 보내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두려움을 없애줄 성령을 주시며,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주님의 증인이 되기를 바라시며 우리를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증인은 참 어려운 일이어서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 없고, 못 본 것을 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가 이루어집니다. 못 본 것을 철저하게 보고, 그리고 본 것을 증언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확실하게 있음을 증언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권한을 주시고, 우리에게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하시며, 제자들이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고 이르십니다. 우리가 용서 받지 못할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는 사랑으로 용서하지 않은 것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용서는 사랑의 극치이며 사제의 사죄권으로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음을 표징으로 삼습니다. 그 것은 최종적인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서 용서하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토마스 사도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느 영화에서 보니까,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시신을 누군가 훔쳐 갔다고 하니까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러 다니느라고 혈안이 되어서 제자들과 같이 있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만나서 복수하려는 마음이 가득했다고 전합니다. 이는 영화의 얘기지만 아마 나 또한 시신마저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결코 없어진 시신을 찾기 전에는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토마스를 내세워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당시의 제자들이나 사람들을 대변합니다. 주님의 상처에 손을 대어보고, 상처를 직접 눈으로 보고 믿겠다는 정신은 좋은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경영학에서는 그렇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속담에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재삼 확인을 강조합니다.

 

   토마스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분명 토마스보다 더 그렇게 확인하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토마스는 바로 주님과 같이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항상 눈뜨면 보았을 주님을 그렇게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과 같이 생활하지 않았으니 더 비통해 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금 또한 실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덜 의심하니까 그만큼 신앙도 미지근할 것입니다. 마치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나는 많이 슬펐고, 친구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덜 슬픈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멀게 느껴졌을 때 그냥 대충 믿게 됩니다. 그렇게 대충 믿음을 갖는 것이 바로 토마스의 경우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토마스를 비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토마스의 비통함과 간절한 사랑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토마스의 신앙이 부러울 것입니다.

 

   토마스는 즉시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의심을 품었음을 용서청합니다. 진정으로 토마스는 주님의 못 자국에 손을 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의심을 버리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지금도 부활을 확실하게 믿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믿음을 가지기도 어렵습니다. 그 것은 성령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임을 오늘 주님은 확실하게 설명하십니다. 다른 제자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시신을 찾으러 다니느라고 성령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엉뚱한 것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성령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속 에서도 엉뚱하게도 신앙을 다른 곳에서 찾고 하느님을 실제적인 세상에서 찾으며, 성령을 받지 못하면 결국 겉에서만 맴돌 수밖에 없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다만 성령을 받아 그 사실을 믿습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설명하십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분명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을 누릴 자격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보고 믿는 것과 보지 않고 믿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이 사실 확인의 수준에서 머물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보지 않고도 확신을 가지고 믿음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권권복응'(拳拳服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윗사람의 말씀을 두 손을 마주 잡고 공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여 순종하면서 따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말씀은 직장 상사의 말이나 본당 신부님의 말씀보다도 더 소홀하게 생각하고 지키지 않는 안일한 태도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희에게 성령을 내려주시어 확신을 가지고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을 믿기를 바라시는 주님, 저희가 교만하고 당신의 그 깊고 뜨거운 사랑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실 확인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나이다. 자비의 주님, 이제 저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사랑하고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자신감 있게 앞장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당신의 말씀을 권권복응하는 자세를 간직할 수 있도록 두려움의 은총을 주소서. 자비의 사랑의 주님!  

 

    -선교사랑방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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