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5 조회수687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7년 4월 15일 예수 제2주일 다해
 

 

So the other disciples told him,

"We have seen the Lord!"

But he said to them, "Unless I see the nail marks in his hands

and put my finger where the nails were,

and put my hand into his side, I will not believe it."

(Jn.20.25)

 
제1독서 사도행전 5,12-16
제2독서 요한묵시록 1,9-11ㄴ.12-13.17-19
복음 요한 20,19-31
 
저는 우리 본당 신자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정말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 모습에 늘 감사할 뿐입니다. 성당 옆에 있는 종교미술학부 부지 구입을 위해서 우리 성당은 계속해서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15억. 말이 15억이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신자들이 하나가 되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주 구역별로 돌아가면서 음식 판매를 하고, 각 단체도 허리띠를 졸라서 건축금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려고 합니다. 또한 성당에서 일할 것이 있으면 자신의 특기를 최대한 발휘하여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강당 및 성당 전체의 리모델링, 그리고 장애인 램프도 신자들의 힘으로 이루어졌으며, 얼마 전에 만든 성체조배실도 신자들이 함께 해주셨기에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기도가 소홀한 것도 아니지요. 많은 분들의 기도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 바로 우리 간석4동 성당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의심을 많이 가지고 성당에 왔었습니다. 처음으로 본당신부를 맡은 저로써는 너무나 큰 성당이었거든요. 따라서 성당 옆에 있는 종교미술학부 건물을 과연 살 수가 있을까? 15억이라는 돈을 모을 수가 있을까? 오래된 성당은 신자들이 드세다고 하던데, 내년이면 본당 설립 30주년을 맞이하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이곳에서 휘둘림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쓸데없는 걱정과 의심이었습니다. 신자들의 열심에 벌써 목표액의 1/3을 채웠고, 얼마 전에는 교구에 그 액수를 미리 지불함으로써 우리 본당이 충분히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걱정과 의심들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심과 걱정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나만을 생각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토마스 사도처럼 말이지요.

예수님을 본 다른 제자들은 토마스 사도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토마스 사도는 이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과학적인 원리를 설명해가면서 제자들이 허깨비를 본 것이라고 설득을 합니다. 이런 그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시지요.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특히 토마스 사도처럼 공동체를 벗어나 나만의 신앙생활을 하고자 할 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 동료들의 소중한 체험을 비웃을 때, 우리들은 의심과 걱정의 굴레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푸시는 ‘평화’마저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은 나만의 신앙 안에서 부활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평화”를 빌어주면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공동체 안에 계신 주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공동체를 사랑하고 함께하는 사람은 바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와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을 합시다.



좋은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좋은생각' 중에서)

나이들 수록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만나기 전부터 벌써 가슴이 뛰고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하는
그런 사람보다는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더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길을 걸을 때 옷깃 스칠 것이
염려되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야하는 사람보다는
어깨에 손 하나 아무렇지 않게
걸치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더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커서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서
자신을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보다는
자신과 비록 어울리지 않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더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도 상처받으며 아파할 까봐
차라리 혼자 삼키며 말없이 웃음만
건네 주어야하는 사람보다는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절실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차마 입을 벌린다는 것이
흉이 될까봐 염려되어 식사는커녕
물 한 방울 맘껏 마실 수 없는
그런 사람 보다는
괴로울 때 술잔을 부딪칠 수 있는 사람
밤새껏 주정을 해도 다음 날 웃으며
편하게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더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쩜 나이 들 수록
비위 맞추고 사는 게 버거워
내 속내를 맘 편히 털어놓고 받아주는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Jesus came, although the doors were locked,
and stood in their midst and said, “Peace be with you.”
Then he said to Thomas, “Put your finger here and see my hands,
and bring your hand and put it into my side,
and do not be unbelieving, but believe.”
Thomas answered and said to him, “My Lord and my God!”
Jesus said to him,
“Have you come to believe because you have seen me?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have believed.”
(Jn.20.26-29)
 

 

Alone on the Road -Anna G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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