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미사 중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마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6 조회수706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 글은 대전교구 태안성당 2007년 4월 15일(부활 제2주일)치 주보에 실린 글입니다. 



                        미사 중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마다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서산 본당(현 동문 성당)에서 오일복 요한 신부님(프랑스인/은퇴 후 논산 ‘성모 마을’에서 생활하시다가 지난해 심장마비로 선종)께서 매주 오셔서 미사를 지내주시던 공소 시절이었습니다.

한번은 주일 미사를 지내러 강당(현재도 남아 있는 건물)에 들어서니 강당 안에 복사(서산 본당 신균식 도미니꼬 신부님의 명으로 태안에 오시어 최초로 교회의 기초를 닦으신 성백석 루까)님이 계셨습니다. 당시 성 복사님은 60대 노인이셨지요. 나는 어른을 뵙는 순간 얼른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드렸지요.

그런데 복사님은 내 인사를 받지도 않으시고 굳은 표정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성당 안에서는 사람한테는 인사를 허지 않는 법이야.”

나는 적이 무안한 심정이었지만 성당 안에서는 사람끼리 인사를 하지 않는 법이라는 그 말뜻을 금방 이해하였습니다. 잘 명심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지요.

그리고 그 후로는 일체 성당 안에서는 아무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노인들이 많던 시절이었지요. 성당 안에서 노인을 뵙게 되면 인사를 하려고 했다가도, 그 순간 성 복사님의 말씀이 떠오르곤 해서 인사를 그만두다 보니 그것은 차차 버릇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더불어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우선 제대의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성당 벽에 붙듯이 제대가 설치되어 사제께서 신자들을 등지고 미사를 지냈는데, 어느 날부터 제대가 벽에서 떨어지더니 사제께서 신자들을 마주보고 미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사 중간에 신자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평화를 빕니다”하며 옆 사람끼리 서로 고개만 숙였는데, 나중에는 전후좌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서로 악수를 하는 풍경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사는 한결 정답고 즐겁고 생동감 있는 미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미사 중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는 간혹 성 복사님 생각이 나곤 합니다. 우리 태안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고, 초대 고대연 야고버 신부님이 부임하시고, 제대의 위치가 바뀌고, 사제께서 신자들을 마주보고 미사를 지내시며 미사 중간에 신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도, ‘하느님이 계시는 성당 안에서는 사람한테 인사를 하지 않는 법’이라는 성 복사님의 그 고정관념과 관습은 전혀 변하지를 않았지요. 고등학생 시절 또 한번 성당 안에서 복사님께 인사를 드렸다가 다시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니까요.

나는 어른이 된 후 성당 안에서 묘한 갈등을 겪곤 하였습니다. 스스로 나를 변화시켜 성당 안에서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성 복사님 생각이 나곤 했습니다. 때로는 묘한 관성 작용으로 어른을 보면서도 인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버릇없는 청년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나를 느낄 때마다 이상한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기도 했지요.

그 후 나는 인간의 고정관념이라든가, 관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고정관념과 관습이라는 것은 대개 너무도 완고하여 시대의 변화와 전혀 상관없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정관념과 관습의 틀을 깨는 변화 운동은 언제나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바윗돌에도 구멍을 내는 물의 흐름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늘 변화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성당 안에서는 어른들께 인사도 하지 못하며 소년 시절을 살았던 내가 오늘에는 미사 중간에도 이 사람 저 사람과 악수하며 조금은 부산하게 인사를 나누는 현실에서 새삼스럽게 변화를 실감하며, 정답고 즐겁고 생동감 넘치는 미사에서 더욱 확실한 ‘천상의 잔치’를 느낍니다.

                                            <지요하 막시모 / 진흥아파트 구역>


(2007년 4월 15일 / 부활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