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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과의 만남:요한복음20,19-31 (1부)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과 토마스,부활 2주일 복음
작성자박순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6 조회수1,190 추천수0 반대(0) 신고
 

부활 2주일 복음: 요한 20,19-31


텍스트: “성경”,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2005

        19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에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자국을 직접 보고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그분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하고 말하였다. 26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보고 손을 보아라. 손을 뻗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그러자 예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예수님께서는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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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주일인 오늘 복음에서는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토마스가 부재한 제자들 모임에 발현하신 예수님, 토마스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그리고 맺음말입니다. 이 세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 복음은, 두려움과 자기 문제에 갇혀있는 제자들을 해방시켜 믿음의 길로 초대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둘째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문제가 토마스 사도에게만 따로 발현하지 않고, 그를 포함한 제자들 모두에게 발현하셨을까?' 라는 질문으로 독서를 시작하겠습니다. 복음 말씀을 천천히 읽어가면서, 가지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주의해서 살펴본다면 둘째 이야기가 결국 첫째 이야기와 맺음말의 연결점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것입니다.


1.관찰


첫째 이야기에서 부활한 예수님은 유태인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모여 있는 제자들 가운데에 나타나,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말씀을 두 번에 걸쳐 하십니다. 첫번째는 제자들이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잠그고 두려움 속에 갇혀 있을 때이며, 번째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는 장면에 이어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파견 말씀 서두에 있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죄의 용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이야기에서 두려움, 평화의 인사, 파견 용서 사이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음을 추측할 있습니다.

먼저 “평화가 너희와 함께”(19)라는  말씀과 함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행동은 그들을 두려움에서 풀어주고, 그들의 닫힌 마음이 열리게 합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당신의 부활을 입증하는 동시에 제자들에 대한 용서의 표현으로 해석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뵙고 기뻐했다(20) 것이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평화의 인사는 마치 두려움으로 질식해 있는 제자들에게 하는 인공호흡과 같습니다. 기쁨은 이제 겨우 숨을 회복한 자의 안도의 표시일 것입니다. 그러나, 동료(막달라 마리아) 증언(20,18)을 믿지 않고 귀와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는 그들의 마음과 생각의 질식 상태가 워낙 심각한지라 활동하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서 또 한 번 인공호흡을 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파견 명령을 내립니다. 마음을 여는 , 남을  두려워 하지 않는 , 용서 받는 , 이것이 파견을 실행하기 위한 조건 셈입니다.

그러나 파견을 실행하기 전에 필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두 번의 인공호흡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도움>과 <여러분의 용서>입니다. “... 그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며... 22절”, (이는  창세기에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창세 2,7참조). 행동을 하기 전에 곧 파견 임무를 실행하기 전의 마지막 인공호흡인 셈입니다.  이어서 “성령을 받으시오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들은 용서 받을 것이요, 여러분이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23). 말씀은, 문을 잠그고 여는 것이 “여러분” 손에 달렸듯이,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고 안하고는 “여러분” 각자에게 달렸음을 일깨워주면서, 동시에 용서의 , 두려운 마음, 나의 이웃과 혹은 다른 공동체과 나의 공동체를 차단하는 마음의 빗장을 있는 힘이 성령의 도움에 기인하는 것임을 또한 일깨워 주시는 것은 아닐까요?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토마스 사도는 다른 동료들(단수가 아닌 복수임에 유의)이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하는 말을 믿지 않고, 십자가 처형의 흔적을 지닌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져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을 없다고 고집합니다. 토마스의 행동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를 거부하기 보다는 동료들의 말을 듣는 것과 믿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들을 귀를 잠그고 있는 셈입니다. 이는 ‘내가 보아야 하고 내가 만져봐야 하고 내가 믿어야하며, 너희들이 아니라 내가 해야 돼’라는 자기 영웅심의 표출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야기에서 제자들이 두려움 속에 갇혀있었다면 토마스는 지금 자기 고집 속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2부에서 토마스와 예수님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게시판의 용량 제한 문제로 한꺼번에 다 올려지지 않아 2부로 나누어 올립니다. 계속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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