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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례자 요한(예언서)과 메시아(복음)(요한복음3.22~30)/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18 조회수692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7년 4월 18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세례자 요한(예언서)과 메시아(복음) : 요한 3,22~30

 

니고데모는 세례자 요한처럼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였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동문서답을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한 분이신 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파견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라고 요한 17,3에서 말씀하십니다.

 

이 안다는 것은 육안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오랜 세월 살아 가면서 남편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등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으로 살아 가보니까 

"아! 사랑이 오네."  "아! 기쁨이 오네."  

"아! 평화가 오네." 하고 살아 가면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성모님이 임신 1개월이 되어

사촌 언니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 했을 때

이미 임신 6개월이었는데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는

세례자 요한 어린 아이가 기뻐서 뛰어 놀았다고 성경에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세례자 요한을 성령께서 인도하십니다.

세례를 주실 때 비둘기 모양으로 머리에 내려 오시는 분이

메시아라고 성령께서 예언을 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에 있는 메시아에 대한 모든 예언서의 말씀이

예수님께 이루어져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신 분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처럼 우리들이 성경의 말씀이 열리지 않으면,

구리뱀을 쳐다보고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예수님을 쳐다보고

그 십자가 사건이 우리들한테 이루어졌을 때,

우리들에게 구원의 사건이 온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구원이 옵니다.

마태 16,24 에서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들이 니고데모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십자가 사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예화에서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고운 베와 침향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제자이며 나중에 구원받는 제자상입니다.

 

우리들도 니고데모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고,

세례자 요한처럼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성령의 열매인 기쁨으로 살아 가는,

 

두가지 길을 예화로 보여 주십니다.

우리들은 니고데모처럼 살 때도 있고

때로는 세례자 요한처럼 살아 갈 때도 있습니다.

말씀 읽고 묵상하고 미사 예배를 통해서 은총 많이 받기를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것을 증언하게 되는데

이것이 땅에서 하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 11,2~6 을 보면

세례자 요한도 감옥에 있을 때는 영안이 흐려져서

예수님께  "당신이 메시아이십니까?" 하고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감옥이란 죄도 되지만, 자기 마음의 ''ego'' 에 갇혀 있을 때는

우리들도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으므로 매일매일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하는 일도 하느님의 은사이고 은총이며

하느님께서 도구로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은사차원에 있으므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열매차원까지 가야 합니다.

 

3,22 -그 뒤 예수와 제자들은 유대 땅으로 갔다.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거기 머물며 세례를 베푸셨다.

 

설명:여기에서는 세례라는 말이 나오지만 요한복음은 영의 복음이므로

세례라는 말이 잘 안 나오며,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이 세례입니다(요한 2,1~12).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라(요한 3,5)."  하시는 것이

성령세례이며, 예수님께서 요한 4,14 에서

"내가 주는 물은 샘이 되고 생수가 된다." 는 것도

 

생수는 성령을 상징하며

성령세례를 말하며 말씀세례 즉 불세례를 말합니다(마태3,11).

우리들이 받은 세례가 말씀세례이며 성령세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생명의 말씀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본명 마리아에게) 세례를 줍니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 성취로 세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한편 요한도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

   거기는 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세례를 받았다.

 

24 요한이 아직 감옥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대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26 그리고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했다. 

   "랍비,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함께 있던 그분에 대해 증언하셨지요.

   바로 그분이 세례를 베푸시는데 모두들 그분에게로 가고 있군요."

 

27 요한이 대답했다(루카 16,16).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소.

 

28 그대들 자신이 나에게 증언하고 있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에 앞서 보냄 받았을 뿐이오.

 

29 신랑의 벗이 곁에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를 들으면 크게 기뻐하지요.

   내 기쁨도 그렇게 벅차 있소.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하는 법이오."

 

설명 - 메시아를 만난 세례자 요한은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을 노래합니다.

      우리들도 이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도 없다." 고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우리들이 봉사를 하고도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주님 영광 받으옵소서." 라고 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발끈도 차원을 높혀서 보면, 끈이나 수건이나 다 율법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율법을 완성시킬수 없다는 뜻도 묵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요한 11,44 을 보시면

죽은 나자로가 손과 발이 띠로 묶인 채 나왔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풀어 주어라." 했을 때 율법에서 풀려지고 복음으로

부활한 것을 상징합니다.

 

요한 20,7 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  "머리를 덮었던 수건은 염포와 함께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케이마이) 있었다."

 

예수님이 복음이기 때문에,

율법에 매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묶여 있지 않고 개켜져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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