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작은 책」에 농사짓고 살아가는 젊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몇 년 동안 쓰면서 끝부분에 작은 글자로 이렇게 썼다. ‘생각이 깊고 성실한 농촌 총각들이 장가를 못 가고 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농촌에서 살고 싶은 아가씨는 언제든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011-9556-8239 서정홍’
이 작은 글자를 찾아서 읽고 내게 전화를 건 서울 아가씨가 있었다. 나는 얼마나 반가운지 바쁜 농사일 제쳐두고 서울로 갔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진 아가씨이기에 가난한 농촌 총각한테 시집을 가겠다는 것일까? 하도 고맙고 궁금해서 연락을 받자마자 서울에 올라가서 만난 아가씨가 바로 최영란씨다. 그이는 농촌에 사는 부모님께 연탄 보일러 넣어드리기 위해 스스로 상업고등학교에 들어갔단다(요즘 농촌은 거의 기름 보일러로 바뀌었지만). 그리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 대학을 마쳤단다.
이 착한 아가씨 덕분에 나는 뜻밖에 중신아비가 되었고, 한평생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고 농사짓고 살아가는 가톨릭농민회원인 정상평씨를 만나게 해주었다. 두 사람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혼인을 했고, 나는 그 주례사를 했다. “신랑 정상평씨는 헤어지면 금세 그리워지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며, 신부 최영란씨는 100만 명 가운데 한두 사람 나올까말까 한 아름답고 귀한 사람입니다. 어느 누가 부모 형제 반대를 무릅쓰고 고생길이 훤히 열린 농부한테 시집을 가겠다고 하겠습니까?”
황매산 자락 깊은 산골, 대문도 없는 집에서 스스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 부부는 아들 낳고 오순도순 자연과 함께 살고 있다. 이 부부가 사는 모습을 보고 오늘도 많은 젊은 부부들과 젊은이들이 도시를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와서 농사를 짓고 있다.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온갖 쓰레기와 폐수를 함부로 쓰고 버리고 살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봉사와 희생을 요구하고, 아이들한테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자고 외치는 사람들보다 이 부부야말로 진짜 성직자고 환경운동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오직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서정홍(농부시인 · 마산교구 삼가공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