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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변화는 실제로 일어난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20 조회수925 추천수11 반대(0) 신고

 

 

<성변화는 실제로 일어난다.>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요한 6,1-15)



  속담에 눈앞에 진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앞에 실질적으로 혜택을 보여주어야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좋아라하고 따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우리를 위하여 공생활 중에 표징들을 여러가지 들어내 보이셨습니다. 그러한 표징들 중에 특별히 요한복음서에서는 모두 일곱 개의 표징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빵을 많게 하는 표징이 중심에 위치합니다. 이 표징을 중심축으로 하여 앞뒤로 세 개씩 표징이 배치되는데 요한 저자는 의도적으로 순서를 에 관한 표징, 믿음에 관한 표징, 일어섬에 관한 표징으로 배치하였습니다.


  이를 그림으로 표시해보면 기러기가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입니다.


                         (성체성사)

      일어섬(건강, 다시 죄짓지 마라)  (악마의 상징 호수를 건넘)

   믿음(고관 아들의 치유)                      믿음(태생소경의 눈뜸)

(혼인잔치, 거룩한 변화)                        일어섬(죽음에서 소생)



  그리고 칠성사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꼭 집어 칠성사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공번된 교회가 제정한 칠성사가 요한복음에서 나타난 일곱 표징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혼인성사에, 고관 아들의 치유는 굳센 믿음을 강조하는 견진성사에, 38년이나 마비병을 앓은 이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시고 다시 죄짓지 말라고 이르신 것은 고해성사에, 악마의 상징인 호수를 건너 이기신 것은 세례성사에, 태생소경을 눈뜨게 만들고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어 굳센 믿음과 증거의 제자로 만드신 것은 성품성사에, 죽은 라자로를 소생시키신 것은 병자성사(종부성사)에, 빵을 많게 한 표징은 성체성사에 연결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체성사가 모든 성사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우리에게 주시는 성사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쪼개고 나누심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이 골고루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을 제 몸 안에 모시는 사람은 예수님의 몸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권능으로 우리 몸도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시는 죽음의 권세에 눌리지 않을 몸으로 변화가 일어나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요한저자는 공관 복음서와 달리 독특하게 여기에 한 어린아이가 지니고 있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봉헌하는 장면을 적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어린아이가 보잘것없는 음식일망정 기꺼이 내어 놓을 때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마 예수님께는 그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제 것을 내어 놓으려 하지 않고, 내어 놓을 것이 없을 때 흔연히 제가 먹을 것을 희생하여 봉헌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견한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감사의 예식을 거행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나누어 주십니다.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고도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그 빵과 물고기를 하나도 버리지 말고 모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낭비되는 것을 막으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성체성사를 거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6,51)라고 말하셨지만, 성체성사를 상징으로 해석하여 성변화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끔씩 특별한 날에 교회의 취향에 따라 흉내만 냅니다. 그들은 로마서와 요한 복음서를 최고의 책으로 삼으면서도 그 정신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께서 온전하신 하느님이시며, 온전하신 인간이셨듯이 성체도 온전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며, 온전한 밀떡입니다. 그 역설을 깨달을 수 있어야합니다.

  현존이신 성체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자 스스로 밀떡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교리로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무런 설명 없이 믿으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정확하게 이끌어 주어야합니다. 우리가 그저 신앙이니 믿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이 열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야말로 영적 소경입니다. 


  십자가 수난이라는 어리석음과 굴욕으로 죽음을 이기셨듯이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역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몸으로 겪으시고 실제로 실천하셨듯이 성체성사는 실제로 성변화가 일어나는 성사입니다. 믿을 교리만이 아닙니다. 교우들도 이런 점을 분명히 알아두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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