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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들의 눈짓 / 류해욱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25 조회수981 추천수7 반대(0) 신고
꽃들의 눈짓


  며칠 전 어느 찻집을 하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서로 마주한 탁자 위에는 이름 모르는 예쁜 꽃이 있었습니다. 꽃이 참 예쁘게 피었다고 했더니 제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제가 해 준 것은 물 밖에 준 것이 없는데 이 꽃은 제게 친구가 되어 주네요. 어느 날 꽃망울이 맺히고 봉우리를 터뜨리더니 매일 환하게 웃어 주잖아요. 이 꽃을 보면 저는 아주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랍니다.”
  그 분의 말을 들으면서 조지훈 선생님의 ‘민들레꽃’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민들레꽃    

                           조지훈

까닭 없이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조지훈 선생님은 문득 눈에 들어온 민들레꽃 한 송이를 보고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문학평론가들은 이 시를 놓고 민들레꽃을 의인화하여 멀리 떠난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고 해설합니다마는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시인 선생님은 그냥 들 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온 꽃 한 송이를 발견하고 허리를 굽히고 가만히 앉아 꽃을 바라보면서 꽃이 건네주는 미소에 기쁨을 느끼고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닐까요? 꽃이 맑은 눈을 들어 우리를 바라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우리네 삶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큰 감동에서가 아니라 작은 꽃 한 송이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작은 꽃 이야기를 하니까 안도현 시인의 ‘제비꽃에 대하여’도 떠오릅니다. 김현성씨가 작곡하고 양희은씨가 노래를 불러서 많이 알려지게 된 시이지요.

제비꽃에 대하여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말씀의 집’ 뒷산을 오르면 자주 제비꽃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무덤가에 많이 피어있습니다. 그래도 워낙 작아서 무심히 걸으면 스쳐지나가기 마련이지요. 시인의 표현대로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작고 특별히 예쁠 것도 없어 보이는 꽃인데 가만히 앉아 들여다보면 참 귀엽고 정이 가는 꽃입니다. 시인은 봄이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에만 제비꽃 한 포기를 피워두고 간다고 표현했지요. 여기서야말로 제비꽃은 사랑의 상징이지요. 스쳐지나가지 않고 허리를 나추어보면 거기 우리가 나누어야 할 사랑이 있습니다.
  꽃은 우리에게 맑은 눈을 들어 바라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데 우리는 무엇이 그리 바빠 허리를 낮추고 가만히 앉아 향기로운 꽃 내음을 맡을 여유가 없는 것일까요?

  류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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