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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 떠난 사람을 꿈에서 만나면...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26 조회수857 추천수5 반대(0) 신고

              세상 떠난 사람을 꿈에서 만나면...


    


▲ 2005년 8월 7일, 우리 가족 '신앙의 고향'인 전주 전동성당을 찾았을 때의 가족 모습. 아내는 '찍사' 노릇을 핑계로 모습을 감추었고...  
ⓒ 지요하

제법 긴 세월을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잠을 자다가 꿈에서 세상 떠난 이를 본 기억은 별로 없다. 이 글을 쓰려고 찬찬히 기억을 기울여보았는데, 정말 세상 떠난 이들을 꿈에서 본 기억은 몇 번 되지 않는다.

<1>

주변의 세상 떠난 이들 중에서 내가 최초로 꿈에서 본 사람은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가진 대자(代子)다. 20대 후반 청년 시절의 일이니까 대략 30여 년 전의 일이다. 1975년이던가, 나는 그해 봄에 중학교 2년 후배인 세 사람을 동시에 세례를 받게 하면서 그 세 사람의 대부가 되었다. 한꺼번에 세 명의 대자를 얻은 것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은 기혼이었다. 일찍 결혼하여 딸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만 폐암에 걸리고 말았다. 온갖 투병도 보람 없이 그는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로 꽃다운 아내와 겨우 돌 지난 어린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가 떠난 후 몇 달이 지났을 때였다. 밤에 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내 방과 가까운 대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님"하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나가보니 그가 문 밖에 서 있었다. 서둘러 문을 열고 반갑게 그를 대했다.

문 밖에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오라고 했지만 그는 왠지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왜 그래? 얼른 들어와"하다가 잠이 깨었다. 잠이 깨는 순간 나는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우리 집 문 앞에 서 있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고, "대부님"하고 나를 부른 소리가 내 귓속에서 계속적으로 재생음을 내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시계를 보았다. 확실한 시각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침미사 시간이 임박한 시각이었다. 나는 빠르게 옷을 입고 방을 나간 다음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시는 어머니께 사정을 말하고 돈을 얻었다(확실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폐를 편지봉투에 담으면서 성당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자동차를 갖지 않은 시절이었다.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없었다. 두 다리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헉헉거리며 성당에 도착하니 신부님이 제의실에서 제의를 입고 있었다. 나는 미사예물을 제대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고, 미사 복사를 하며 내내 대자 스테파노 생각을 했다. 그가 대부에게 위령미사를 청하기 위에 내 꿈에 나타났다는 생각이 신비한 흥분마저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그를 위해 여러 번 위령미사를 봉헌했는데, 지금도 우리 집 문 앞에 서 있던 그 모습이며 "대부님"하고 부르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2>

선친께서 별세하신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20년 동안 나는 꿈에서 선친의 모습을 단 한번 뵈었을 뿐이다. 그것도 선친께서 작고하신 해였다.

1986년 봄이었다. 선친께서 별세하신 후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꿈에 선친께서 집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선친은 마루를 오르시더니 방으로 들어오셨다. 선친께서 사용하셨던 방을 내 방으로 삼아 사용하던 중이었다.

선친께서 방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까지 보고 나는 잠이 깨었다. 선친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생전의 모습과 동작으로 집 안으로 들어오시고 마루를 오르시고 방안으로 들어오셨을 뿐이었다.

그런 꿈을 꾼 후 나는 꿈속에서 뵈었던 선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선친이 입으신 옷이 옛날에 누님이 지어드린 코트임을 알게 되었다.

선친 별세 후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선친의 유품은 거의 사라졌다. 육필 원고 수십 장과 누님이 지어드린 코트 한 벌만이 남게 되었다. 나는 그것들을 고이 간직하면서 지금도 해마다 사순절 때는 선친의 코트를 입곤 한다.

20년 동안 단 한 번 꿈에서 선친을 뵌 사실이 섭섭하면서도 다행이라 여겨지고, 꿈에서 선친의 모습을 뵌 것 때문에 선친의 코트 한 벌을 남겨 잘 보관하며 지금도 해마다 사순절 때는 그 코트를 입는 것이 정말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3>

며칠 전 꿈에 제수씨를 보았다. 제수씨는 깔끔하고도 예쁜 모습이었다. 제수씨는 자신이 살아났다고 했다. 죽은 제수씨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랍고 신기했다. 그 놀라움과 신기함 속에서 반가움에 못 이겨 신나게 악수를 하고, 아내를 불렀다.

아내도 동서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반가움에 못 이겨 동서의 손을 잡더니 얼싸안았다. 두 동서가 서로 얼싸안고 좋아하는 것을 보다가 잠이 깨었다.

제수씨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현실 인식으로 말미암아 금세 더욱 허망한 마음이 되었지만, 꿈에서 제수씨를 보았다는 사실이, 어떤 여운 같은 것이 내게 감미로움을 안겨주었다. 꿈속에서도 놀라워하고 신기해하며 반가움을 나누었던 감각의 실체 같은 것이 계속 내 뇌리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그날 아침 식사자리에서 가족에게 간밤의 꿈 얘기를 했다. 저녁식사 때는 동생에게도 그 얘기를 했다. 특히 동생이 반가운 기색이었다. 지난해 언젠가 동생은 아내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에 아내를 본 사실이 너무 좋아서, 꿈에서 본 아내 생각에 열중하며 운전을 한 탓에 그만 출근길 단속 카메라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3만원의 범칙금을 물게 되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더라는 말을 하며 동생을 웃었는데, 물론 행복한 웃음은 아닐 터였다.

미신에 민감한 사람들이 들으면 꿈에서 죽은 사람을 만난 것을 좋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과 만나 악수하고, 두 동서가 얼싸안고 한 것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할 법도 하다.

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좋게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제수씨의 깔끔하고 예뻤던 모습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처음으로 꿈에서 제수씨를 보았다는 사실, 제수씨의 깔끔하고 예쁜 모습, 놀라움과 신기함 속에서도 반갑게 악수를 하고, 두 동서가 서로 얼싸안고 한 꿈속의 그 일들이 지금도 감미로움을 안겨준다.

<4>

어제는 오후 걷기 운동 시간에 모처럼 만에 백화산 뒤 냉천골 길을 걸었다. 우리 가족 모두의 추억들이 어려 있는 길이었다. 그 길을 걸으며, 어디를 가든 제수씨가 함께 한 추억들이 있음을 생각했다. 참 재미있게 살았다. 참으로 많은 곳을 함께 갔고, 많은 길들을 함께 걸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그곳에 잠시 머물렀던 제수씨와 다시 만나곤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추억들은 과거지사임을 다시 생각하곤 한다. 오늘은 곧 어제가 되고, 현재는 고스란히 과거가 된다. 모든 것은 순간이고, 모든 오는 것과 가는 것은 동시이다. 우리 모두는 시기각각 미래로 나아가면서 동시에 과거로 빨려간다.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런저런 별리(別離)들이 우리 가족에게도 예비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 시간과 언제 어떤 형태로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늘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한다. 곧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그 목적을 향해 가는 일이다. 그것이 확고하다면 별리의 슬픔과 허무함 속에서도 기쁨과 희망을 안을 수 있다.

그리하여 세상 떠난 이와 꿈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서로 얼싸안고 하는 그림에서도 기분 좋은 상념을 안을 수 있고….  


  2007-04-26 13:5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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