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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월 27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26 조회수847 추천수10 반대(0) 신고

 

      4월 27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사도행전 9장 1-20절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사흘간의 바닥체험>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우리는 ‘혈기왕성’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거칠 것

없이 탄탄대로를 걷던 한 젊은이(사울, 청년 시절의 바오로)의 추락과정을 접하

고 있습니다.


사울은 정통 유다인이자, 바리사이 가운데 바리사이였으며, 유다교 수호에 목숨

을 건 돌격대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은 제대로 율법을 공부한 사람으로, 오직 율법만을 구원의 방

편으로 여겼으며, 율법의 실천과 연구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런 사울이었기에 율법을 사사건건 비판하고, 자신이 목숨처럼 여기던 각종 세

칙들을 모조리 어기고 깨트려버리신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을 도저히 용납할 수

가 없었습니다.


사울은 또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몰래 집회를 열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인육제를 벌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정통 유다교 수호의 첨병임을 자랑하고 있던 사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흉악한 행위를 서슴없이 일삼는 그리스도교의 척결에 앞장서기로 결심합니다.


사울은 ‘그리스도교 섬멸’이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사제에게 갑니

다. 그리고 ‘특별서한’을 발부해줄 것을 청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자기 마음

대로 구속할 수 있는 일종의 ‘체포권’ ‘체포영장’을 신청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참으로 오묘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교 박해에 가장

앞장섰던 적대자 중의 적대자 사울을 수제자 베드로 못지않은 중요한 사도로 선

택하신 것입니다.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한 명이라도 더 체포하기 위해 살기를 내뿜으며 길을 떠

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드디어 하느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엄청난

밝기의 빛과 함께 사울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집니다. 이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갑니다.


갑작스런 하느님의 음성, 그로 인한 실명으로 인해 사울이 받았던 충격이 얼마

나 컸었던지 그는 사흘 내내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간 앞길이 창창했던 사울, 병원 한번 안 가볼 정도로 건강했던 사울, 오직 장

밋빛 미래만을 꿈꿔왔던 사울, 지난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도 내리막을

걸어보지 못했던 사울이었기에 당시 받은 충격은 상당했습니다. 자존심도 완전

히 바닥나버렸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너무나 건강했던 사울이었기에 남의 손에 이끌려 걸어간다는

것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 사건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 체험은 사

울 인생 전체의 분기점이 될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사흘이란 짧은 시간이었지

만, 그 시간 동안 사울의 내면에서는 대대적인 작업 한 가지가 이루어지고 있었

습니다.


‘자기 죽음 체험을 통한 거듭남의 역사’가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암

흑 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끌려가던 사울은 그 치욕적

인 체험을 통해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총체적인 재평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

신의 삶에 대한 재구성과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방향 설정이 이루어진 것입

니다.


다마스쿠스 사건을 통해 완전히 추락한 사울이었지만, 제대로 미끄러진 사울이

었지만, 그는 사흘이란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체험하셨던 십자가 죽음을 고스란

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처참하게 부서졌던 예수님의 사흘을 사울 역시 온몸

으로 체험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가끔씩 사울에게 행하셨던 방식으로 접근해오십니

다. 때로 기고만장한 우리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내려치시고 심연의 밑바닥으로

내려 보내십니다. 우리의 완고함, 우리의 똥고집을 완전히 꺾어놓으십니다. 일

종의 충격요법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 안에 가끔씩 겪게 되는 추락, 실패, 바닥체험, 미끄러짐...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이런 충격적인 사건들은 우리가 하느님을 새롭게 만나고, 그로 인해 새

인생을 출발하라는 하느님 측의 메시지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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