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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떠나시겠습니까?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28 조회수631 추천수1 반대(0) 신고

 

<떠나시겠습니까?>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요한 6,60-69)



  인간이 하느님의 소식을 거부할 수도 있는 자유, 이 자유는 정말로 소름끼칠 만큼 두렵게 다가옵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떠나간 제자들을 두 번 다시 부르시지 않는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떠난 제자들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길이 어디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떠난 제자들은 믿기를 거부하는 미래의 사람들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님 말씀을 듣기 거북하다고 말하는지, 그것은 예수께서 보여 주시는 행동양식과 본보기를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신비스런 말씀에만 팔려 자기들 방식대로 해석하고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요한 1,39)처럼 함께 생활하면서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말이나 겉모습으로 판단내리면 상대방을 부분적으로만 보게 되며,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속단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당신 말씀을 이해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떠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떠남은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 단절할 것인지 결단을 촉구합니다. 예수님의 ‘모진 말씀’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물론 그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양식으로 내어 준다고 하신 말씀을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베드로와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살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그 문 안으로 한 걸음을 떼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우들이 세례를 통하여 교회에 들어와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교우들이 냉담에 빠지거나 교회를 등지고 떠나게 됩니다. 냉담하게 되는 교우들이 자신의 좁고, 인간적 소견으로 판단한 결과라면 그들을 일깨워 주어야합니다. 혹시라도 교우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 생긴 것이라면 얼른 나서서 치유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냉담하게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교회에 다니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입니다. 세례 받은 뒤 먼저 각종 단체에 가입해서 인간적인 유대를 통해 기쁨을 경험해야 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서먹서먹한데도 나를 이끌어 주는 사람들이 없다는 이유로 각종 단체에 가입하기를 꺼리게 됩니다.


  일단 교회에 발 들여 놓았으면 떠나지 말고 교회에 머물러 있어야합니다. 교우들과 관계를 지속하면서 교회에 머물러 있어야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교회가 마련한 대부 대모 제도는 신앙의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우선 대부 대모가 나서서 교회에 다니는 참 맛을 느끼게 만들어 주어야합니다.


  저는 관면혼배로 혼인성사한 후에 서약한 대로 바로 세례 받았습니다. 그때 서주신 영세 대부께서 아직도 저를 위해 매일미사 다니시며 기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연세가 벌써 여든이 넘으셨습니다. 세례 후 23년이 되었는데 매년 저의 영명축일에는 대부님께서 꼭 책을 사서 보내 주십니다. 직접오시거나 우편으로 보내 주시는데, 직접 오셔서는 “대자, 내가 자네를 위해서 매일미사 참례해서 기도하네, 언제나 주님께서 대자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 잊지 말게.”하십니다. 책 속표지에는 언제나 축복의 말씀과 좋은 묵상거리를 적어 보내주십니다.

  

  저는 이런 대부님을 모신 것을 정말로 주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님 덕분으로 많은 책을 읽게 되었고 남보다 일찍 성경 공부도 시작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대부님을 본받으려고 저절로 노력하게 됩니다. 대부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매일 기도합니다. 또 저의 대자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확신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있습니다. 비단 제 가족이나 대부님만이 아니라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확신은 제 신앙의 뿌리입니다. 어쩌면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일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당연히 저를 위해 기도하시고 계시죠.


  교우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여러분도 저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부님 정말 감사합니다. 주님 은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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