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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29 조회수67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7년 4월 29일 예수 제4주일 다해
Jesus said:
“My sheep hear my voice;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I give them eternal life,
and they shall never perish.
(Jn.10.27-29)
 
제1독서 사도행전 13,14.43-52
제2독서 요한묵시록 7,9.14ㄴ-17
복음 요한 10,27-30
 
저는 이제까지 혼인 주례를 꽤 많이 섰습니다. 그 이유야 당연히 신부니까 그렇지요. 가톨릭 신자는 성당에서 신부님 앞에서 혼인성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혼인 주례를 서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일 년에 적게 잡아 10번 정도 혼인 주례를 했다고 치면, 지금 현재 9년차 신부 생활을 하고 있으니 벌써 90번 정도의 혼인 주례를 선 것이지요. 여기에 관면 혼배까지 생각한다면 그 수는 엄청난 숫자로 변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혼인 주례를 하는데 아직 제 자신이 어리다는 어색함과 다른 이의 소중한 결혼식의 주례를 맞게 되었다는 긴장감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익숙해진 것이지요. 그런데 어제는 혼인 주례를 서면서 엄청나게 떨었답니다. 왜냐하면 난생처럼 성당에서 혼인 주례를 선 것이 아니라, 예식장에서 주례를 섰기 때문이지요.

본당의 청년 둘이 사정상 예식장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예식장에서 주례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강력히 반대를 했지요. 예식장에서는 연세 좀 있으신 분이 주례를 서는 것이 아니냐고……. 따라서 은사님이나 존경하는 분께 부탁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처음으로 일반 사회 예식장에서 주례를 서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이것 역시 똑같은 혼인 주례인데……. 왜 이렇게 떨리던 지요? 바로 처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조심히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주례를 하게 되더군요.

처음으로 하는 것. 그것은 이렇게 긴장감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긴장하는 만큼 최대한 정성을 기울이게 되지요. 그래서 첫 마음을 잊지 말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즉, 매 순간을 정성을 다해 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 첫 마음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대신 익숙해진 마음으로 대충 대충 지금의 상황만 잘 모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바로 우리 각자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성소에 대해서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는 날인 것입니다. 결혼 성소, 사제 성소, 수도 성소……. 그 모든 성소가 다 하느님께서 주신 귀한 부르심으로 자기가 받은 그 성소를 소중하게 여기고 다시금 정성을 다해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부르심을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혹시 내가 받은 성소를 소중하게 여기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소를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대충 대충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그 만큼 더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더 먼 여행도 있다고 하네요. 바로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을 의미하는데, 따뜻한 가슴을 갖더라도 실천하는 발을 갖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말입니다.

나의 성소를 지금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머리입니까? 가슴입니까? 아니면 발입니까?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지요?


내가 받은 성소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을 해봅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세상은 아름다운 것('좋은생각' 중에서)

 
 
살아가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입니다.

그 벅찬 감정이 인생에 희열을 안겨주며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꿈의 성질이 어떤 것이든
인간은 꿈을 꾸는 한 아름답습니다.

꿈은 팽팽한 현악기처럼 아름다운
음률을 내기 위해 삶을 긴장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작은 것까지
모두 아름다움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고
너무 많은 사람을 욕심내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인생은 문제의 시작과 끝을 되풀이하며
종착역에 이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험악한 바위 틈에 피어오른 한 송이
꽃을 볼 수 있음이 삶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그리웠던 곳에서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마주보면 마음이 마냥 푸근해집니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그리운 곳과
보고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어줄지 모르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자신이 자신다울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참 사랑일 것입니다.

서로가 상대를 "나" 답게 하는 일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 답기를 격려해 주는 것이
아름다운 사랑일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썰물과 밀물의 때가
서로 교차합니다.

절망의 풍경 속에서도
희망은 기다림으로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The Father and I are one.”
(Jn.10.30)
 



A Lover`s Conc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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