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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은 오묘하시다 / 이인주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29 조회수803 추천수10 반대(0) 신고

 

하느님은 오묘하시다

 


지금은 가톨릭 사제로 살아가지만, 실은 불교의 스님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을 알아가다 보니, 나의 마음은 가톨릭으로 바뀌어 갔고, 가톨릭 안에도 독신의 삶이 있고, 도시에서도 수도의 삶이 가능함을 알고는 공부를 했다.

 

그 삶이 어떤 삶인가를? 그런데 그 깊이가 아주 깊기에 그냥 세속 사람의 삶으론 어렵다 판단되었기에 기꺼이 가톨릭 사제가 되기를 원했고, 지금은 예수회 사제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부족함을 느낌은 나뿐이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그런 중에서도 나는 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럴 때 마다 다가오는 향수 하나는 깊은 산속의 옹달샘이 있듯이, 사실 어릴 적 바랐던 꿈은 깊은 산속 옹달샘 숲 옆의 작은 칩거의 집 암자를 생각했었기에, 그건 영원한 꿈인가 하고 아쉬워 해본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런 삶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도 또 허락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가 필요로 하기보다 세상이 그것을 영적으로 요구하게 되면, 또 그렇게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가운데 내가 얼마나 그분과 일치를 이루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내가 사제가 되기 전, 많은 좋은 벗들이 있었다. 지금은 사제로 살아가는 벗들이다. 우리는 직장인이었지만 주말이면 성당과 작은 카페에 모여서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과 우리의 마지막 등에 대해 밤을 세워가며 토론하곤 했다. 그 끝이 바로 사제의 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성소모임이었다. 그 중 한사람이 몽골리아에 선교사로 나가 있는 이준화(로벨도)신부이다. 그로인해 나 또한 성소에 길에 들어서는 결단을 내렸다. 나의 수도 삶의 은인이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서울에 왔고, 자신이 일군 삶의 보따리를 내 앞에 펼쳐 놓았다. 역시 날 새기의 고담줄론이다. 아! 대단하다. 혼자의 힘으로 저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구나.



현지 사람들의 삶이 어려우니 우선 먹을 것을 해결하려고, 농장을 차렸다고 한다. 양과 돼지, 밀과 감자를 농사짓는데 워낙 여름이 짧아 농사짓기는 쉽지가 않고, 추운 겨울에 동물도 잘 자라질 않으니 이럭저럭 농장을 운영하기란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사도직센터를 운영하는데, 그 규모도 작질 않다. 청소년 비정규 학교와 방과 후 학교, 노인들을 위한 시설들, 그리고 경당 등이 운영되어 지고 있다. 거기에 무료 병원까지 이미 주춧돌을 놓고 있어, 이만저만 하느님의 은총이 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 그가 아이 하나를 학교에 보내달라기에 서강대학교와 이야기하여 장학금은 확보해 놓았는데, 삶의 공간이 고민이라 했더니, 기도 모임의 자매 한 분이 “제가 하숙집을 하는데, 다른 것 못해도 그 영역은 선물로 받겠습니다.” 한다.

 

마치 예수님께서 먹 거리 종자(씨)로 오병이어를 아이에게 선물 받은 기분이라 너무 좋았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료병원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 잘 지어지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능력보다 하느님의 능력을 믿으니까........



내가 모 회사 영업담당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시골 아주머니 한 분이 빚이 너무 많아, 그것이 해결 안 되어 고민 고민하다가, 그 집을 방문하고는, 아니 이건 또 뭐야 하고, 입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봄날 저녁, 물어 찾아간 시골의 저 구석 끝 집은, 전기도 없었고, 아이들은 엄마가 오질 않으니 배가 고파 울고, 할머니는 너무 늙었는데 좀 망령이 들었던 것으로 보이고, 남편은 말기 암이였다.

 

그러니 생계를 위해 아주머니는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고 그녀를 보는 순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녀를 기다리다보니 아이들이 안 되었기에 우선 빵과 우유를 사다 아이들을 달래니, 참 순진한 시골의 아이들이라, 언제 울었냐 싶듯이 그저 까르륵 한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한참을 기다리니 아주머니는 왔고, 보는 순간 죄인을 용서해 달라하는데, 무엇이 죄인가 싶어 같이 미안해 하다가 잘 살라 하고는 돌아왔다. 그날 밤, 양심성찰을 하는데, 왜 그리 인생이 서글프던지, 홧김에, 하느님 인간이 도대체 뭡니까 하고 하느님께 하소연 하고는, 병으로 누었다.

 

그 아픔이 쉽게 가시질 않더니, 그냥 일주일을 앓았다. 그리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았다. 무병이었다. 그길로 나는 노벨도 신부와 이야길 나눴고, 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다. 물론 오래 전부터 내면에는 어떤 흐름이 있었다. 그것을 다 표현하자면 참 길기에....... 다만 하나 이런 과정을 보면서, 하느님께서는 오묘하신 분임을 나의 성소 하나만으로도 확 느낌이 온다.


 

                                                                      < 예수회 홈페이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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