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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소(聖召)" --- 2007.4.29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이민의 날)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29 조회수758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라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07.4.29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이민의 날) 
                                                                  

사도13,14.43-52 요한 묵7,9.14ㄴ-17 요한10,27-30

                                                            

 

 

 

"성소(聖召)"

 

 



피정 지도 때마다 제가 자주 던지는 질문입니다.


“형제님(자매님)들은 무슨 재미(맛) 으로 살아가십니까?”


과연 여러분은 무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즉시 답을 못하고 당혹스러워 하다가,

잠시 후에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숙연한 분위기가 조성되곤 합니다.

 

평생 화두로 삼아 자문해야할 물음이며,

특히 오늘 같은 성소주일은 더욱 그러합니다.


며칠 전 정원 산책 중,

아주 낮은 자리 소박하게 피어난 제비꽃들을 보는 순간

반가워 써놓은,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꼭 일 년 만에
불쑥 찾아 온 반가운 사랑

곳곳에서
소리 없이 피어나는

하늘향한
제비꽃 보랏빛 간절한 사랑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렇습니다.


때 되어 하늘 향해 피어나는 꽃들의 간절한 사랑

아무도 막을 수 없듯이,

하느님의 거룩한 성소 역시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믿는 모든 이들,

예외 없이 모두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고 있는 성소자들이요,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을 찾고 따르는 재미로, 맛으로 사는 우리들입니다.


세상에 평범하거나 우연한 성소는 하나도 없습니다.


나름대로 다

특별하고 고유한,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성소입니다.


어느 자리 건, 자기 있어야할 제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면 됩니다.

 

막연한 성소가 아니라

구체적 제 삶의 자리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코 성소에 우열도 있을 수 없고

고정된 성소도 없습니다.


나름대로 고유한 모습과 색깔, 향기의 꽃들이기에,

어느 꽃이 어느 꽃보다 좋다고 할 수 없듯이,

사제성소나 수도성소가

결혼성소나 독신성소보다 우월하다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비교나 우열의 대상의 성소가 아니라,

하느님의 정원의 다양한 꽃들처럼

교회 내에서

서로 조화와 보완 관계에 있는 성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웃의 성소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내 성소를 보완해주는

이웃의 성소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 다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처럼

하느님의 바람같이

자유롭게 다니며 복음 선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수도자란 무엇인가?”


매일 묻는 자가 수도자란 말도 있습니다.

비단 수도자에만 국한 된 물음이 아니라

매일 물어야 할 우리의 성소요 제자리입니다.

 

고정 불변의 제자리 성소가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과정 중에

내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성소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문제는 어디에 사는가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이점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부각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과연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잘 알아듣습니까?


우리를 아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알고 따를 때

말 그대로 주님과의 코드가 맞는 삶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완전히 아버지와 코드가 맞는

주님의 삶이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래서 주님을 전심전력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래야 마음의 귀가 열려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깊어지는 관계와 더불어

믿음, 희망, 사랑도 풍요로워집니다.


주님께서 선사하신다는 영원한 생명,

바로 이런 주님과의 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 주님과의 하나 된 관계에 있는 우리들

아무도 빼내어 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러니 그 어디든 하느님 불러 주신 자리에서

주님과의 깊은 관계 중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면 충분합니다.

 

사람마다 주님과의 관계도 천차만별이기에

영원한 생명의 정도도 천차만별입겁니다.


하여 자연스레 답이 나옵니다.


영원한 생명의 맛으로, 재미로 사는 우리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맛으로, 말씀 맛으로 사는 우리들입니다.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

유다인들의 박해와 추방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찼다 합니다.

 

온갖 박해와 추방에도

영원한 생명의 체험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한이 본 환시의 주인공들을 통해

바로 영원한 생명의 실체가 환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환난과 시련을 통해 정화되는 영혼이요,

이를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게

바로 믿음이자 영원한 생명의 체험입니다.

 

천상에서 완전히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을

바로 거룩한 천상잔치 미사를 통해

앞당겨 맛보는 우리들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떤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자신의 성소에 충실하며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 이들에게

완전히 실현된 영원한 생명의 모습입니다.

 

이 거룩한 성소주일 미사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은

나름대로 당신의 부르심에 충실했던 우리를

생명의 샘으로 인도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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