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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1 조회수954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7년 5월 1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
 
 
My sheep hear my voice;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Jn.10.27)
 
제1독서 사도행전 11,19-26
복음 요한 10,22-30
 
20대 청년과 70대 할아버지가 100미터 달리기를 한다면 과연 누가 이길까요? 누구든지 예외 없이 20대 청년의 승리를 점칠 것입니다. 이 20대의 청년 역시 자신의 승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합의 결과는 70대 할아버지의 승리로 끝났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100미터 선수였을까요? 물론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평범한 할아버지일 뿐입니다.

사실은 이 청년이 승리를 너무 자신한 나머지, 자기는 한 발로 뛰어도 할아버지를 이길 수 있다고 큰소리 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청년은 한 발로 이에 반해 할아버지는 두 발로 뛰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결과는 청년의 패배였지요. 젊음이라는 유리한 조건 때문에 승리할 수 있다고 스스로 불리한 조건을 내걸었지만, 그 불리한 조건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패배의 조건이 된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이러한 교만 때문에 스스로 패배자의 길로 걸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그 유리한 조건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특히 우리 신앙인들에게 이러한 모습이 더욱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자녀’라는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유리한 조건을 살리지 못하고 대신 이 세상의 법칙만을 중시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즉,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 않으며, 주님께서 이 세상을 유리하게 살 수 있도록 한 사랑의 법칙 또한 실천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장 행복해야 할 우리들이 가장 행복하지 못한 사람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한 발로 뛰겠다는 교만을 보인 청년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유다인들은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들은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이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교만해집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뜻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즉,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조건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들이 원했던 예수님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풀어줄 정치적인 메시아였던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진리를 계시하는 메시아로 자처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양떼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아니 알아들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십자가의 못 박은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철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가장 불리한 조건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 그 사랑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유리한 조건임을 기억하면서, 그 조건을 잘 살리는 오늘을 만들어 보십시오.


교만해지지 맙시다. 내가 받은 유리한 조건을 차 버릴 수도 있어요.



시클라멘의 교훈은(강미숙, '행복한 동행' 중에서)



나는 나름대로 화초를 사랑하고 또 잘 안다고 자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시클라멘이라는, 꽃이 거꾸로 피어나는 화초를 눈여겨보았다. 언제봐도 꼿꼿한 모습이 매력적이어서 화분 하나를 사다가 창가에 두고 물을 주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꽃대가 더는 올라오지 않고 점점 썩어 가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처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던 시클라멘일 것이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화초를 잘 안다는 나의 선입견이 작용한 탓이다. 열심히 물을 주면 달라질 거라 생각했지만 꽃은 더 이상 피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해진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해 봤다. 그랬더니, 아뿔싸! 시클라멘은 저면관수 화초로 화분 밑 부분에 물을 주어 뿌리가 물을 위로 끌어올려야만 살 수 있는 꽃이었다. 내 잘못임을 안 뒤에 꽃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이미 시든 꽃대를 정리하며 여러 번 반성했다. 그리고 다시 화분 받침에 물을 주니 신기하게도 되살아났다.

사람이 이렇게 모르고 저지르는 과오가 얼마나 많은가. 말 못하는 식물도 이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도 잘 모르거나, 괜한 선입견으로 잘못 판단하고 결정해 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역시 사람은 모르면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꽃을 키우며 삶의 지혜를 배운 소중한 한 주였다.
 
 
 
“I told you and you do not believe.
The works I do in my Father’s name testify to me.
But you do not believe, because you are not among my sheep."
(Jn.10,25-26)


 

 

 

R.Kelly - I Belive I Can 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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