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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 송이의 장미꽃이 피기까지~♣/ 오기순[알베르토]신부님.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2 조회수1,583 추천수18 반대(0) 신고

                          

                        

          

 

 

♣~두 송이의 장미꽃이 피기까지~♣



- 오기순[알베르토]신부님.-

                               ※ 이 글은 이수동[베드로]님 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경기도 관악산 두메 산골에 외딴 초가삼간을,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이 내려덮는 야밤중입니다.

문만 열고 나서면 험준한 산등성이 깊은 골짜기가 끝없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도 한 심산유곡입니다.

며칠을 내리는 눈은, 높은 산을 온통 뒤덮고 깊은 골짜기들을 메워 산짐승들은 밤이 깊도록 처량한 비명을 지릅니다.


눈이 길길이 쌓인 산과 골짜기를 울리는 그 메아리는 더욱 차갑고 쓸쓸하며 애상적으로 들려오는 밤입니다.

잎이 다 떨어져 헐벗은 수목들은 차가운 눈을 수북이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오들오들 떨고만 있고 따사로운 햇빛의 꿈을 꾸며 춘삼월을 애달프게 고대하는 듯 그 정상이 처량하고 가련합니다.


이렇게도 한적하고 외떨어지고 눈에 덮인 산모퉁이에 동그라니 붙어 있는 초가삼간은 그 누구의 집인지 무엇 하는 사람의 집인지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기에 이렇게도 외롭게 사는지 그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병풍같이 둘러싸인 산들과 맷방석 만하게 올려다 보이는 하늘을 벗 삼고, 우거진 초목과 얼기설기 엉킨 나무들이 기어오르는 머루 다래넝쿨을 이웃 삼고 사는 사람들의 보금자리인양, 그 초가삼간이 너무도 초라합니다.


골짜기를 도란도란 흘러내리는 도랑물도 얼어붙었는지 조용하기만 한데 누구를 기다리는지 밤이 새도록 호롱불은 외롭게 흔들립니다.

아니면 밤을 지세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딱한 사정이라도 있는지 그 가냘프게 비치는 호롱불이 눈물 나도록 애처롭기만 합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젊은 애기 엄마는 어린것을 업은 채 엎드려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돌아와야 할 남편을 그리며 안타까운 꿈을 꾸는지 조용하기만 하고 호롱불만이 독수공방을 가득히 채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깊은 밤중에는 먼 동네에서 개 짖는 소리와 심야 삼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도 간단히 들리건만,

오늘밤 따라 그것도 저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입니다.

무서울 정도로 호젓하게 불길한 장막이 푹 내려앉는 불안한 밤이기도 합니다.

오직 엄마 등에 업힌 아가의 숨소리만이 쌕쌕 들리고, 때때로 너무도 많이 쌓인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눈으로 가득찬 골짜기에 메아리칩니다.

마침 이 때 뜻밖에도 인기척이 나고 눈이 길길이 쌓인 삽작문 밖에서는 두런두런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아기를 업은 채 잠이 들었던 아기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 호롱불을 끄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밖을 살핍니다.

가슴은 두 방망이질을 하고 정신은 아찔해서 칠흑같이 캄캄한 밤이지만, 그야말로 앞이 캄캄합니다.


그것은 너무도 천주학쟁이를 잡으러 개 쏘다니듯 쏘다니는 포졸들한테 쫓기고 놀랐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숨어 있는 신부님을 찾아가 성사를 보러 간 남편이 돌아오지도 않고 기별도 없어 애타게 기다리던 가슴이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남편이 포졸들한테 잡히지나 않았나? 가슴을 졸이며 애간장을 태우던 그 젊은 아기 엄마의 귀에 “여보! 자우?”하는 남편의 반가운 음성대신 낯 설은 음성들이 두런거리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번이고 표독스러운 포졸들한테 붙잡힐 뻔해서 죽을 고비를 넘긴 가슴이라 가슴이 철썩 내려앉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때 산짐승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둘러친 나무 울타리를 우지직우지직 부수고, 그 울타리를 뛰어 넘는 눈빛에도 검은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 엄마는 즉시 포졸들이 급습한 것을 알아채고 미리 뒤꼍에 뚫어 놨던 개구멍을 빠져나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정신없이 길길이 눈이 쌓이고 뒤덮은 산골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엎어지며 쓰러지며 뒹굴며 눈 속을 한참 헤매며 죽기를 한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때때로 눈 속에 파묻힌 산짐승들이 놀라 괴성을 지르면, 포졸들이 아우성을 치는 것 같고 곧 뒷덜미를 덮치는 것 같아 예수 마리아를 몇 번이고 다급하게 불렀습니다.

먼동이 트자 뒤를 쫓는 포졸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어느 정도 숨을 돌리고 등에 업힌 아기에게 젖을 먹이려고 등을 더듬으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가는 간데없고 포대기만이 허리 아래로 흘러 내렸습니다. 그 엄마는 털썩 주저앉으며 아무리 포대기를 뒤져보고 털어 봐도 아가는 없고 눈 고드름만이 매달렸습니다.

엄마는 그 포대기를 끌어안고 몸부림쳤습니다.

대성통곡이 터져 나오는 입을 아가의 포대기로 막고 미칠 듯이 울었습니다. 울음소리를 듣고 포졸이 추격할까 두려워 아가를 잃고도 터져 나오는 울음도 제대로 울지 못하는 기막힌 아기 엄마입니다.


정신없이 미칠 듯이 몸부림치며 도망치다 등에 업힌 아기가 빠져나간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울음도 눈물도 나지 않을 정도로 기막히고 참혹한 아기 엄마는 사방을 둘러봐야 어디가 어딘지 방향도 알 길이 없고, 얼마만큼 도망을 왔는지 어디를 가야 살 수 있는지 알 길이 없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은 길길이 쌓인 눈뿐입니다.

높은 산에서 내려 미는 눈사태의 무서운 소리만이 귀를 막았습니다.

그래도 아기 없는 빈 포대기를 두르고, 세상에 태어난 지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눈 속에 생매장을 어느 때 했는지도 모르는 아기 엄마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비통을 안고 살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오막살이나마 집으로 찾아가자니 포졸들이 지키고 있을까 두렵고 어디로 가야할지, 갈 곳이 없으면서도 첩첩이 쌓인 눈 속을 헤치며 방향도 없이 넘어지며 뒹굴며 떨어지며 눈 속을 기고 또 기어 인가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겨우 구사일생으로 동네를 찾아가 이집 저집 문전걸식을 하는 걸인의 신세가 됐습니다.

그 기막히고 비통한 사연을 홀로 가슴에 안고 마음속에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아기 엄마요, 남편을 잃은 고독하고 슬프기만 한 젊은 부인입니다. 남모르는 기막힌 고통을 가슴에 가득히 안고 인생의 고된 길을 홀로 걸어야 하는 비운의 여인이기도 합니다.

온 국민들한테 극악무도한 죄인으로 취급을 받는 몸이고, 주야로 뒤를 쫓는 포졸들이 맹수 같이 무섭기만 하고 지겹기만 한 신세라 자기의 신분을 드러내 놓지 못하고 항상 숨어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입니다.

그 어느 집에도 오래도록 몸을 담고 살수가 없는 신세라 이집 저집 이 문전 저 문전을 돌아다니며 그날그날 구걸해서 원수 같은 목숨을 이어 가야만 하는 처량하고 고달픈 인생입니다.

남편이 어찌되었나, 눈 속에 빠뜨린 그 어린것은 어찌 되었나, 하는 비통의 근심은 가는 길을 막아, 밤이나 낮이나 가슴을 메우는 슬픔과 고통을 참을 길이 없어 산 속에 들어가 울기를 그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앞자락은 마를 날이 없이 눈물에 젖었습니다.


이렇게 울며불며 애통하게 살아가는 그 불쌍한 여인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운명이 닥쳐왔습니다.

너무도 오랜 세월을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태운 탓인지 두 눈을 가지고도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집 저집 문전을 더듬어 다니는 봉사가 됐습니다. 행방불명이 된 남편의 소식이나 눈 속에 빠뜨린 어린것의 소식이라도 들어볼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지팡이를 길잡이 삼아 심산유곡에 숨어사는 신자동네를 찾아 헤맸습니다.

관악산을 이 잡듯이 뒤지고 찾았어도, 강원도 두메산골을 다 찾아다녀도, 충청도 산골이라는 산골을 다 더듬어도, 교우들의 동네를 찾을 길이 막연했습니다.

그때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가 심하고 이리떼 같이 혈안이 돼서 천주교 신자들을 잡으러 싸다니는 포졸들한테 쫓기어 심산유곡을 사람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산 속에서 화전민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봉사 여인은 산골짝을 헤매며 교우들을 찾아 헤맸어도 가도 가도 실망과 허탈만을, 괴로운 가슴에 주어 담을 뿐 희망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그때만 해도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상놈인, 옹기장이들이 모여 사는 옹기촌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상놈들만이 사는 옹기촌에 교우들이 많이 숨어산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신분을 숨기고 사는데 안성맞춤이라 산중이 아니면 옹기장수로 자기 신분을 감추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팔도강산 옹기점이라는 옹기점을 모조리 찾아 헤매도 교우들을 만날 길이 여전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수원 장에 나가 옹기전을 맴돌며 교우들을 찾던 어느 날 뜻밖에도 옹기장수 여교우를 만났습니다.

찾아 헤맨 지 10년 만에 만난 그 여교우를 끌어안고 맺히고 서렸던 슬픔을 폭발시키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끝없이 하소연도 했습니다.

그 여교우한테 교우들이 숨어사는 산골도 알았고 옹기전도 알았을 때, 이 소경의 여인은 삶의 새로운 용기를 되찾았고, 삶의 의욕을 다시 회복했습니다. 교우들을 찾아다니며 남편의 생사를 수소문했으나, 역시 그의 애타게 그리고 찾던 남편의 소식은 캄캄했습니다.


이렇게도 실망에 몸부림치다가 남편이 수원 감영에서 옥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눈먼 아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며 춤을 덩실덩실 추며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지지리 못난 자기 남편에게 치명의 월계관을 주셨으니 이 어찌 고맙지 않고 춤을 안 출 수가 있느냐고 미칠 듯이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소경이 된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남루한 옷자락을 적셨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교우들도, 울면서도 춤을 추는 소경을 얼싸안고 울며불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 부인의 눈물은 비통의 눈물도 아니고 비애의 눈물도 아닌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고 닦아 짓물러 소경이 된 그 눈에 담으며 25년을 하루같이 흘리며 살았습니다.

여전히 지팡이 하나를 재산으로 길잡이로 삼고 걸인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래도 그 봉사 부인은 원망도 한탄도 없이 오직 감사하며,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을 자랑삼아 무심한 지팡이에게 내 남편이 있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 다오! 눈 속에 얼어 죽은 내 아기가 있는 그곳으로 나를 이끌어다오! 매일매일 이 두 가지 소원을 되풀이하며 살아갔습니다.


한편 야밤중에 포졸들한테 쫓기며 길길이 쌓인 눈 속을 헤치며 도망치다 어느 때 어디서 빠뜨린 줄도 모르는 아기는 어찌 됐을까요.

영영 쥐도 새도 모르게 얼어 죽어 그 어리디 어린 시체가 말도 없이 눈 속에 파묻혀 춘삼월에 눈이 녹기를 기다릴까요.

인자하신 하느님은 그렇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먼 훗날에 그 아기의 증손이 둘이나 주님의 사제를 만드실 계획을 그 눈 속에 빠진 아기 위에 세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오기선 신부도 바로 그 눈 속에 빠진 아가의 증손들입니다.

이것은 인간은 그 아무도 짐작도 못했고, 오직 그런 설계와 계획을 꾸미신 하느님만이 아시는 섭리였습니다.


땔나무가 없어 밤새도록 떨던 어느 할아버지가 땔 것을 구하러 눈을 헤치고 산으로 가던 중에 눈 속에 파묻혀 빨갛게 언 아기의 발 하나를 발견하자 뒤로 넘어질 듯이 놀라는 동시에 얼어 죽은 어린것이 너무도 불쌍하고 딱해서 눈을 파헤치고 그 어린 송장을 끄집어냈습니다.

인정 많은 그 할아버지는 자기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얼음장같이 꽁꽁 얼은 아가의 작은 시체를 안고 자기 앞자락으로 감싸며 허둥지둥 집으로 달려가서 아랫목에 파묻고 얼른 몸이라도 녹여 묻어주려고 그 몸이 녹기를 기다리며 어린것의 애처로운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한편 이 어린것을 빠뜨리고 생사도 알 길 없는 그 어미는 얼마나 애통 절통할까 생각하며, 자식이라고는 가져보지 못한 두 늙은이들은 살아생전 쏟아 보지 못한 부정과 모정을 어찌 할 길이 없었는지 그저 안타까워하고 애통해 하기만 했습니다.

그 어린것을 묻을 궁리를 서로 했습니다.

할머니가 이불 속으로 손을 디밀어 얼마나 녹았는지 더듬다 말고 깜짝 놀라 영감을 쳐다보며 “아기가 살았어요!”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이 순간 할아버지도 정신없이 이불을 걷어 치며 얼굴을 아기의 코에 대고 숨을 쉬는가, 손으로 어린 가슴을 더듬으며 가슴이 뛰는가를 살피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땅에 묻을 것을 애타게 걱정하던 두 노인들은 아무리 살펴도 정녕 그 아기는 살아 있었습니다.

두 노인이 서로 끌어 않고 아기의 얼굴을 만지며 볼에 볼을 대고 비비며 아기는 산신령님이 우리 두 늙은이에게 주신 아기라고 미칠 듯이 기뻐하고 눈물을 흘리며 산신령님께 감사를 올리고 또 올릴 때, 아기는 힘차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일평생 아기의 울음소리 한 번 나지 않고 쓸쓸하던 가정에 아가의 힘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두 노인은 미칠 듯이 즐거웠고, 늙은 두 부부 사이에는 전에 없던 애정이 불꽃처럼 서로의 가슴에 퉁겼습니다.

산신령님이 주신 아기를 서로 껴안고 그들은 생전처음 느끼는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정을, 말라붙었던 아내의 정이 되살아나고 엄마의 정을 느껴보지 못했던 뜨거운 모성애를 가슴에 벅차게 안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얼굴은 갑자기 젊어지고 홍조가 일었고 영감님도 한결 젊어진 듯이 꼬부라진 상투를 매만지며 행복스럽고 만족하게 웃으며 아기를 안아보고 만져보고 그저 대견하고 마냥 즐겁기만 하고 산신령님께 감사하는 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아기를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안고 달래느라 진땀을 뺍니다.

아기는 배가 고픈지 엄마가 보고 싶은지 울어대며 보채기만 합니다.

그래도 아기를 안은 할아버지는 마냥 기쁘기만 하고 산신령이 주신 아기라고 생각되어 더욱 소중하기만 합니다.

부엌에 아기의 암죽을 끓이는 할머니는 신바람이 나서 엉덩이 춤이라도 추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방안에다 대고 아기 좀 달래라고 연신 소리를 지릅니다.

빨리 끓지 않는 암죽은 조바심을 치는 할머니의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자식 가져보기가 평생 원이었기에 산신령에게 거듭거듭 감사하며 빨리 끓이느라 눈물을 흘리며 불을 불어댑니다.


이렇게 끓인 암죽을 한 숟갈씩 떠 넣으며 할머니는 뜨거운 모정을 알았고 야금야금 받아먹는 아기를 들여다보는 할아버지도 구수하고 깊숙한 부정을 그 아기에게 아낌없이 처음으로 쏟았습니다.

이렇게도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옥이야 금이야 하며 온 정성과 애정을 그 아기에게 쏟으며 기르고 키웠습니다.

두 부부는 무럭무럭 자라고 커 가는 그 아들에 모든 희망을 걸고 구차하나 행복하게 세 식구가 살았습니다.

아기는 커 가며 그 늙은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고 떠받들고 애정과 효성을 다했습니다. 그 아기가 커서 주먹만 한 상투를 꼽고 장가가서 어엿한 어른이 됐습니다.

또 양순한 남편이 됐습니다.

장가를 들어 새아기를 맞이한 늙은 부모들은, 그 원앙새 같기도 하고 한 쌍의 산비둘기 같기도 한 그들을 슬하에 둔 것을 대견히 생각하고 그들에게 애정을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그렇게도 착하고 아들 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하던 할아버지가, 아니 늙은 아버지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임종이 가까워지자 아들을 머리맡에 불러 앉히고, 내가 죽거든 나의 장례를 치르고 너의 부모를 찾아라 하며,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얼어 죽은 것을 주어다가 되살려 키웠다는 사실과 주운 장소를 소상히 설명하고, 아무래도 천주학을 믿다가 포졸들한테 쫓기고 도망치다 눈 속에 빠뜨린 것 같으니 천주학쟁이들이 사는 곳을 찾아가 너의 친부모를 찾아보라는 마지막 부탁을 남기고, 그 아들의 무릎을 벤 채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효성과 정성을 다해 모시던 젊은이는, 또 다른 친부모가 있다니 더구나 천주학쟁이 생부모가 있다니 이는 너무도 충격적이고 너무도 무서운 자기의 운명이었습니다.

천주학쟁이들이 감옥에서 목매어 죽고 곤장을 맞아 죽고 칼에 목이 잘려 죽고 가산을 몰수당한다는 풍문을 들을 때마다 몸서리치며, 혈안이 돼서 천주학쟁이들을 잡으러 쏘다니는 포졸들을 오다가다 만나기만 해도 몸이 떨릴 정도로 공포에 질렸는데, 바로 그 천주학쟁이가 자기의 생부모라니 이 웬일인가 하고 가슴은 두려움에 떨고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 저주스럽고 무서운 천주학쟁이 부모를 찾아야 하느냐, 아니면 모르는 체하고 그대로 살아야 하느냐, 이렇게 기로에 선 그의 고민은 날로 심해 갔습니다.

그는 참다못해 늙은 양부, 그렇게도 착하고 인자했던 그분의 유언을 따라 천주학쟁이 생부모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임을 서로 감추고 숨기며 살아가는 교우들을 찾을 길이 막연하고, 드러내 놓고 천주교 신자를 찾는다는 것이 더욱 위험하고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그는 옹기장이들 틈에 천주학쟁이들이 많이 끼어 산다는 소문을 듣고 수원 장을 위시해서 장마다 다 찾아다니며 옹기장수를 상대로 해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옹기장수를 가까이 해서 은근히 천주학쟁이들의 처소를 물으면 딱 잡아떼고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인내 롭게 옹기전을 맴돌며 천주학쟁이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원 장날 옹기전에서 옹기를 팔던 옹기장수가 같이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으려다가 슬그머니 나가는 것을 보고 수상쩍어 뒤를 따라 나가니, 그는 굴뚝 뒤에 숨어서 헛손질을 하듯이 재빠르게 오른손이 이마와 가슴에 그리고 양어깨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이놈이 필경 천주학쟁이다 생각하고 그 뒤를 밟았습니다.

뒤를 밟다가 호젓한 산골 오솔길에서 그를 붙들고 자기의 사정을 말하며 천주학쟁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그야말로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딱 잡아떼며 생사람 잡으려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도리어 화를 냈습니다.

그때만 해도 천주학쟁이를 밀고하고 잡아주고 하는 유다가 많아서 교우들은 극히 조심을 하는 때라, 누가 천주교 신자고 어디 사는 것은 극비밀리에 부치고 사는 때라, 교우들도 서로 친하고 믿을 만한 사이가 아니고는 천주교 신자들의 동네나 신부님이 숨어 있는 곳을 서로 알리지 않았던 때입니다.


끈덕지게 그 옹기장수를 장날마다 만나 애원한 탓인지, 너무 진지하게 탄원하는 그 젊은이를 믿었던지, 그와 만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그 옹기장수는 그 동안에 교우들끼리 연락해서 포졸들한테 쫓기다 아기를 눈 속에 빠뜨렸다는 여교우의 소재를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그 옹기장수의 안내로 태산준령을 며칠을 넘고 험악한 골짜기를 건너 뛰어, 그야말로 무서운 산골에 옹기종기 게딱지같이 산중턱에 붙어있는 오막살이 화전민 촌에 다다랐습니다.

맹꽁이 콧구멍 같은 방을 기어 들어가니 사람들이 들고 나는지도 분간 못하는 처량한 신세인 호호백발 소경 할머니가 남루한 옷을 걸치고 앉아 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왔다 해서 공포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모여들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과 회장이 입회하는 가운데 어머니와 아들은 25년 만에 서로 극적인 상봉을 했습니다. 그러나 눈 속 아기를 빠뜨렸다는 어머니의 진술과, 눈 속서 얼어 죽을뻔 했던 자기를 주어다 길렀다는 죽은 할아버지의 진술과, 빠뜨린 장소와 주운 장소는 같아도 이는 내 아들이다 이는 내 어머니다 하고 서로 증거를 댈 수는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눈 속 빠뜨리고 25년을 울다 지쳐 눈까지 멀었으니 그 아들을 만나도 그 얼굴을 알아 볼 길이 없고, 아들은 젖먹이 때 어머니를 잃고 25년의 세월이 흘러 이렇게 호호백발이 된 할머니한테서 자기 엄마의 모습을 찾아 낼 수는 없었습니다.

방으로 토방으로 마당으로 가득 찬 교우들이 모자임이 틀림없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그 모자는 서로 끌어안고 내 아들아! 내 어머님! 이라고 하기에는 서로 너무도 서먹서먹했습니다.

눈이 까맣게 먼 어머니는 아무리 아들이라는 그를 더듬고 쓰다듬어도 만지고 또 만져 봐도 내 아들 같지는 않은 안타까운 심정만이 그의 가슴을 메웠습니다.

아들 역시 젖먹이로 어머님과 기구한 생이별을 한 후 25년의 세월이 흘러간 오늘, 그 모습을 알 길이 없었기에 이렇게도 늙고 소경이 된 노파한테서 어찌 그 기억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던 그 옛날의 어머니의 얼굴을 찾을 길이 있겠습니까요.

이렇게 어머니도 아들도 그리고 모여든 교우들도 석연치 않은 심정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때 눈이 먼 할머니는 내 아들이라면 어려서 홍역 할 때 뜨거운 아랫목에 뉘어서 등에 덴 자리가 있을 것이니 옷을 벗고 돌아앉으라 하고 그의 등을 더듬어 내려갔습니다.

회장도 교우들도 벌겋게 벗은 청년의 등을 훑어 봤습니다.

과연 흉터가 확연히 나타나자 회장과 교우들이 덴 자리가 있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눈으로는 보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만 뗀 자리를 더듬는 어머니는 가련하고 측은하기만 했습니다.

그는 한참을 더듬어 보고 쓰다듬어 보다 왈칵 끌어안으며 “아! 내 자식아! 내 아들아!”하며 그렇게도 오랜 세월을 두고 남몰래 울고 또 울던 그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래서 아들도 그 가련한 어머니를 껴안고 대성통곡을 했고 모든 교우들도 같이 울며 눈물을 주체 못했습니다.


이렇게 그 어머니와 그 아들은 25년 만에 서로 만나 엄마는 아들을 찾고 아들도 엄마를 되찾았습니다.

이것은 한 토막의 눈물겨운 극적인 상봉이었습니다.

그 후 눈 속 빠뜨렸던 그 어리고 불우하고 불쌍했던 그리고 얼어 죽을 뻔했던 아기의 두 증손이 신부가 됐습니다.

나의 형 오기선 신부와,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입니다.

그 아기가 눈 속 영영 얼어 죽었던들 우리 형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더구나 친형제가 사제도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두 형제는 각각 사제가 되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 고생을 했습니다.

나는 주님께 부름을 받고 신부될 때까지, 신부가 돼서 60고개를 넘을 때까지 당하고 겪은 모든 사연들을 「사랑은 물결같이」라는 시시한 자서전에 담았습니다.


아름다운 장미는 꽃을 피우기 전에 날카롭고 앙칼진 가시를 수없이 내밀어야 하듯이, 우리 형제가 주님 앞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가시와 같은 수많은 고통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눈 속 파묻힌 어린 아기가 살아나 그의 증손이 주님 앞에 아름다운 두 송이의 장미와도 같이 활짝 피게 하신 주님의 섭리는 묘하기만 합니다. 남편을 잃고 아기를 눈 속에 떨어뜨리고 비통을 가슴에 안고 남모르게 울다 지쳐 눈 까지 먼 그 엄마에게, 천만 뜻밖에도 그 아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그 아들의 무릎을 베고 눈물로 짓무른 눈이나마 영원히 감게 해주신 주님의 그 자애로우신 마음이 눈물 나도록 고맙기만 합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더니 과연 인간이 생각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것을 주님은 섭리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과 불행과 재난을 인간들은 참을 길이 없어 한탄하고 자탄하며 자애롭게 섭리하시는 주님을 원망까지 합니다.

그러나 나는 원망하지 않으렵니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참기 어려워하고 싫어하고 한탄하고 원망한들 주님은 당신이 마음먹고 설계하신 섭리를 변경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쓰나 다나 주님의 섭리를 따르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꼭 나를 이롭게만 섭리하시는 주심의 사랑을 뜨겁게 느끼며 살아가렵니다.


활짝 핀 장미는 시들 때가 있겠지요. 그때는 부르지 않아도 그 어디선가 날아들던 나비도 모여들던 꿀벌들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신세가 되겠지요. 이와 같이 우리 형제가 젊은 그 시절에는 찾아오는 사람, 만나러 오는 사람들도 많기도 하더니 이렇게 둘 다 늙으니 찾아오는 이 없고 반기는 이 없는 쓸쓸한 환갑노인들이 됐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불만도 없고 미련도 없이 오직 주님의 품안에 그리며 사는 날까지 살아가렵니다.

신부님.....부디 주님 품에서 평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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