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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로 사는가? 살아지는가?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2 조회수646 추천수7 반대(0) 신고

 

<자유로 사는가? 살아지는가?>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요한 12,44-50)

 

 

  요한복음서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졌다는 것은 성서신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1부를 ‘표징의 책’이라고 부르며, 2부를 ‘때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이 대목이 1부 마지막 대목으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마지막 공적담화입니다. 13,1절부터 시작되는 2부에서는 오직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 군중들에게 최종적으로 믿음을 택하라고 요청하시고 계십니다. 이 대목이 전반부의 마무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서문인 로고스찬가 내용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양식을 수미상관법이라고 부릅니다.

 

  아버지께서 영원한 생명을 지니셨기에 인간들에게도 나누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스스로 원하신 일이었습니다. 그 생명을 독점하시고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애쓰셨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낱낱이 아시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그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631 가지 율법이 모두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완성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능력이 부족하여 스스로 깨우치지 못합니다. 누군가 모범을 보여주고 가리켜 보여주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사랑과 용서를 온전하게 가르쳐주실 분은 오로지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말씀이 되시어 이 세상에 들어오셨습니다.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은 인간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뿐입니다(요한 1,12-13). 외 아드님이신 예수님과 한 형제 되어 공동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로마 8,14-17).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을 심판하시지는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믿는 순간부터 그에게 선물로 선사되듯, 그분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언제라도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선언이 바로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굳이 심판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뉩니다. 표지를 거부하는 사람들, 한편으로는 믿고 싶으나 사람이 주는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쏟아질 비난을 두려워하며 비겁하게 외면하는 사람들, 예수께 귀의하는 사람들로 나뉩니다.

 

  표지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보아도 외면하고, 들려도 들으려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익숙한 것에 애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을 놓기 싫어서입니다. 자신이 소유했다는 안도감에 머물러 새로운 진리를 한낱 소리로, 현상으로만 남겨 두었습니다. 한편 두려워하고 비겁하게 숨어 버리는 사람은 쓸데없는 사건에 휘말리지 않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않고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지는 사람입니다. 제 생명을 마음껏 누리는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모두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성공, 돈, 칭찬, 소유, 과시, 명예, 권력, 갈채 등등 얻을수록 더 공허해지는 것들에다 목숨을 걸었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도 실제로는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곳에 매달리는 이유는 진정한 자유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믿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이 주는 자유를 느낄 수 있는데도 타성에 젖어 실행하지도 않고 물러나 버립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영생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고 이 세상에서 살아 본 적이 있는 자만이 그것을 원하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것에 붙들려 집착하면서 강제로 살아진 자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에 넣어 주어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아마 스스로 그곳에서 뛰쳐나올 것입니다. 속담에 고기도 먹어 본 적이 있는 자라야 씹는다고 했듯이 말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부터 참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저 억지로 마지못해서 집착에 이끌려 살아지는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님과 한 형제가 되어 그분처럼 사는 길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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