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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판? or 구원?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2 조회수605 추천수6 반대(0) 신고



복음: 요한 12,44-50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내 자신의 부덕과 악행을 생각할 때는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말씀이다.
그러나 타인들의 죄악을 생각할 때는 참으로 분통터지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신자들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런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런 미지근한 태도라면 
악한 사람이 그에 상응한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이 그에 상응한 상을 받는
이른바 ‘정의’는 언제 실현될 수 있는가.

역사 이래로 ‘하느님의 정의’에 관한 이같은 불평은 계속되어 왔다.

.............


성경 안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정의’는
‘심판’이라는 측면과 ‘자비’라는 측면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정의’라는 말은 우선 법률적인 용어로 연상되면서,
인간의 정의는 일차적으로 관습이나 율법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것이며,
이차적으로는 윤리적인 덕을 실천하는 것으로서 차차 확대되었다.


한편, 하느님의 정의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인도하시고 심판하시는 활동 속에 드러나며,
각자의 행위에 따라 갚으시는 활동 속에서 드러난다고 이해하였다.

이 말에서 우선은 ‘심판’의 측면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는 이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정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서
우주를 조화롭게 통치하시고 피조물을 은혜로 가득 채우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배려,
즉 하느님의 자비와 일치한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구약성경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주로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며,
과부와 고아, 나그네를 돌보시고 그들에게 축복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덕을 실천했건 하지 않았건, 그들이 율법을 준수했건 안했건, 즉 그들의 정의와는 상관없이.

이렇게 하느님이 인간에게 당신의 정의를 행사하실 때에는
그 자체로서 자비의 행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시편의 많은 탄원자들은 자신의 죄를 용서하는 하느님의 정의까지도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무죄로 선언하는 것 자체가
법적 정의 개념으로는 공정한 판결을 위배하는 모순된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역설과 모순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조건없는 은총을 베풀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밝히신다.

이쯤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정의는 결국 당신의 성실성과 인간을 구원하려는 사랑의 의지에 의한 것이며,
구원은 하나의 하사품으로서 단순한 인간정의의 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정의의 두 번째 측면인 자비는
구원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심판보다는 구원의 측면에 더 큰 비중을 두시면서도,
곧이어 이 말씀을 번복하는 듯한 아리송한 말씀을 덧붙이신다.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오용하고 남용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시는 예수님.


오늘 복음 말씀에서 나타나는 바도 그렇고,
위에 언급한 하느님 정의에 관한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에서도
두 가지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즉 역사의 흐름 안에 완성되는 하느님의 정의인 심판과 관련해서,
인간은 정의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한편 하느님의 자비에 의한 하느님 정의와 관련해서,
인간은 정의를 자신의 힘에 의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자비에 의해 정의는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한쪽 측면으로도 치우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타인의 불의와 악행만을 보고 섣불리 하느님 심판이 어디있냐고 따질 것이 아니라
나의 불의와 부덕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정의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실현될 하느님의 정의를 믿고 따르는 겸손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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