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신만이 걸어온 길이 있습니다. 일생을 마리아께 봉헌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위한 제 인생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얼마나 열심히 복사를 했는지 거의 매일 미사 복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복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주례 사제와 함께 신자들 사이를 들어가고 나올 때 들려오는 성가 소리가 저의 작은 가슴에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 감동의 기회를 갖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길은 오직 하나. 사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제가 된다면 이런 감동을 매일 느낄 수 있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그것이 내 성소의 씨앗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후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복사를 했고,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성소의 씨앗은 고등학교로 이어졌습니다. 1학년 농번기 방학 때 어머니와 함께 보리 베기를 하는데 그날따라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이었고 짜증도 많이 났습니다. 보리를 베다 말고 땅에 털썩 주저앉아 낫으로 땅을 콕콕 찍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고통이 오늘 하루, 지금 몇 분이 아니라 앞으로 10년, 100년, 수십 억 년, 그보다도 더 긴 영원까지 이어진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순간 소름이 끼쳤습니다. 지옥에서 받는 고통이 지금 당하는 고통보다도 더 심하고 무겁다면 어떻게 될까?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결국 고통의 길을 벗어나 예수께서 보여주신 길을 따르기로 서원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날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나의 길을 열심히 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길을 보여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때로는 힘들고 험하지만 늘 그분이 함께해 주시고 밀어주시기에 오늘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길을 마다않고 꿋꿋이 걸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나는 오늘도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라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고진배 수사(마리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