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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49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3 조회수538 추천수4 반대(0) 신고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49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 강론은 사제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부터 강론 시간에 우리가 가져야 하는 올바른 소프트웨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강론을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사제가 준비한 방향으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수학 시간에 영어 공부하고, 영어 시간에 수학 공부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 것처럼, 그 시간 동안 우리도 하느님 말씀에 대한 해석을 사제와 함께 하고 있어야합니다.


마치 강론의 겉모습은 사제 혼자 준비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보이지만 내용적으로 그런 흐름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권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우선 그 날 말씀 전례의 주제와 강론을 연결 하면서 받아쓰라는 것입니다.

따로 노트를 준비해도 좋고 미사책의 여백을 이용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이라도 강론 전체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게 묵상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이따금 강론 때 무엇인가 받아쓰시는 쓰시는 분도 계신데, 그것이 단순한 메모로 끝나면 안 됩니다.

복음적인 포인트가 무엇인지 신경 쓰지 않으면 사제가 한 강론을 전혀 다른 내용으로 잘못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전반적인 내용을 필기 하더라도 그 날 강론이 던져주는 묵상 주제로 강론을 요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한 내용을 꼭 활용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받아썼어도 다시 들추어 보지 않으면 헛수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한 주제로 그 주간 평일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하느님 말씀을 해석하는 훈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묵상을 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가톨릭 신자답게 살 수 있느냐 하는 실천적이고 방법적인 문제입니다.

결국 하느님 말씀을 내 삶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은 내 몫이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받는 밥상이 항상 화려할 수 없는 것처럼, 본당에서 듣는 강론도 지겨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부들은 남편이나 아이가 반찬 투정을 하면 자신이 밥살을 차린 것은 생각나지 않고, 그냥 섭섭하고 화가 납니다.

강론을 준비하는 사제도 “오늘 반찬 뭐하지?”하고 고민하는 주부와 비슷한 심정입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우리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이 강론을 약장수처럼 못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어떤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낚시질 하듯이 한두 마디라도 건지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원래 별미가 구미에 당기지, 매일 먹는 밥은 맛이 없습니다.

만약 밥에 어떤 맛이 있다면, 언젠가는 질리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속적 선입관보다 하느님 말씀을 우선하겠다는 심정에서 강론 중에 갖추어야 할 능력이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사제가 아무리 엉터리 강론을 하더라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묻어있을 하느님 섭리를 맛보고 섭취하여 소화시키는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은 미사 중 말씀 전례에서 하느님 말씀을 내 삶으로 만드는 연습입니다.

사제의 강론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듯 하면서도 현실 안에서는 대부분 무시하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면, 내 인생을 남이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 결국 자기 자신이 하느님 말씀을 직접 요리하는 솜씨를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짚어 보았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인간이 해석하는 강론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은 우리 신앙에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하느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새겨서 내 안에 저장하느냐?”하는 문제가 관건입니다.

사제의 강론은 내 현실 안에서 어렵거나 중요한 판단을 복음으로 해석하고 실천하도록 훈련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제의 이상한 말까지도 성령으로 고쳐서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여전히 너울로 가려져 있습니다.

이 너울은 모세의 경우처럼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갈 때에 비로소 벗겨집니다.

주님은 곧 성령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얼굴의 너울을 벗어 버리고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비추어줍니다.

동시에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나 가려졌을 것입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의 악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선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고 우리는 예수를 위해서 일하는 여러분의 종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어둠에서 빛이 비춰오너라’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당신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2고린토 3,15~18. 4,3~6)”........♣†


[50회 신앙 고백 으로 이어 집니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 주임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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