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제 없이 지낸 새벽 공소예절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4 조회수849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제 없이 지낸 새벽 공소예절>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1-6)



  그동안 매일 거르지 않고 복음 묵상글을 올리면서 이 대목만큼 막연한 적이 없었습니다. 만 이틀 동안 끙끙 매어도 묵상이 제대로 나가질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막상 떠나 가시면서도 제자들을 안쓰러워하시는 주님의 심정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주님께서 계시지 않은 공동체가 얼마나 힘들고 각자 마음이 산란할지 짐작하시고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저에겐 그것만으로 묵상하기엔 부족하게 여겨졌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주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여러 체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부재가 첫 제자들 만큼 절실하게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첫 제자들이 아무 준비도 없이 사랑하는 주님을 떠나보내고 나서 겪었을 심리적 불안은 어쩌면 부모나 배우자, 아니 사랑하는 자식을 여읜 것보다 더 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 가족들과 헤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에 흠뻑 빠져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5월3일) 세례 후 처음으로 공소예절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연인지 어느 이웃 본당에 새벽미사에 참례했다가 시작기도로 묵주기도 드리고 입당성가를 부르려는데 전례수녀님께서 사제께서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다고 기다리라고 하시더군요. 해설자분이 엽렵하게 묵주기도를 계속 이끄시고, 반주자는 묵상 곡을 조용히 연주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사제는 오시지 않고, 몸 달은 원장 수녀님께서 동분서주하시는 모습만 보였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사제들과 연락을 마치신 원장수녀님께서 공소예절로 대치하자고 결정하셨습니다. 사제 없이 공소예절 드리는 것이 익숙지 않아 모두들 조마조마한 심정이 역력했습니다. 해설자도 공소예절이 처음이라고 말하더군요. 늘 계시던 사제 한 분이 안계시다고 이렇게까지 당황스럽고 안절부절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때 저는 이것이 저에게 좋은 묵상글 소재가 된다고 퍼뜩 와 닿았습니다. 대교구 서울 본당에서 그것도 신부님이 세분이나 계시는 큰 본당에서 이런 경우가 생긴다는 것은 제게 주시는 특별한 메시지였습니다. 책임을 묻자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열두 제자들이 겪었을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라는 계시라고 감히 생각하였습니다.


  사제가 드리는 기도와 ‘감사의 전례’(Liturgia Eucharistica, ‘성찬의 전례’의 본래 뜻임)가 없이 독서와 복음 낭독, 주의 기도와 영성체로 간단히 마무리 짓는 예식이 무엇인가 허전했습니다.


  비록 감실에 모셔둔 성체로 영성체를 거행했지만, 미사의 중심이 ‘감사의 전례’라는 사실이 새삼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들어 감사를 올리시고, 당신의 몸이니 나누어 먹고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라는(아남네시스) 요청을 오늘처럼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지시에 따라 미사전례에서는 사제가 성령께 청원하며 축성기원(에피클레시스)을 올립니다. 그리고 성찬 제정과 축성문을 낭독합니다. 그리고 나서 모든 교우들이 영성체 예식을 거행하는 것인데, 그 중요한 중심 전례가  빠졌으니 저는 무척 아쉬었습니다.


  만약에 우리 가운데 주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하는 생각에 미치자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제자들이 죽기만큼이나 힘들었을 것이고, 불안하고, 산란했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이해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는 약속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묘하신 주님의 은총을 전혀 기대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체험하게 된 새벽이었습니다.

 

 

박강성노래모음(25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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