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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5 조회수722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7년 5월 5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
 
 
whoever believes in me will do the works that I do,
and will do greater ones than these,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
And whatever you ask in my name, I will do,
(Jn.14,12-13)

 
제1독서 사도행전 13,44-52
복음 요한 14,7-14
 
어떤 사람이 신발을 사러 가기 위하여 발의 크기를 본으로 떴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장에 갈 때는 깜박 잊고 그 본 뜬 것을 집에 두고 온 것입니다. 신발가게 앞에 와서야 본 뜬 것을 집에다 두고 온 것을 깨닫고는 다시 집으로 되돌아갔지요. 그 본 뜬 것을 가지고 다시 시장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신발가게의 문이 이미 닫힌 뒤였습니다. 이 사연을 들은 사람들이 말했지요.

“아니 본 뜬 것을 가지러 집까지 갈 필요가 어디 있소? 발로 신어보면 될 일이 아니요?”

그러자 이 사람이 한심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려면 발이 본 뜬 것만큼 정확하겠습니까?”

어떻습니까? 발이 정확할까요? 아니면 본 뜬 것이 더 정확할까요? 물론 정확하게 발을 본떠서 똑같을 수도 있겠지만, 이 둘 중에서 더 정확한 것은 당연히 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리석은 모습을 우리들이 취할 때가 상당히 많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물질적인 재화나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질적인 부와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연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들은 이러한 세속적인 것들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다른 사람보다도 많이 가졌어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 부와 명예를 쫒고 있다고 말하는데, 결과적으로는 남들보다 많은 부와 높은 명예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발보다도 발 뜬 것이 더 정확하다고 우기고 있는 모습과 행복보다도 부와 명예가 더 좋다고 우기는 모습.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렇게 부차적인 것이 근본적인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될 때, 우리들은 결코 이 세상 안에서 행복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근본적인 것을 쫓는 우리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 근본적인 것은 바로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하시면서 특히 강조하여 말씀하시지요.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께 대한 나의 믿음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주님을 믿고 있었는지요? 혹시 이 세상의 것들을 더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그러면서도 나는 행복하지 못하고 늘 투덜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들의 이런 모습이 얼마나 아쉬웠으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고까지 강조하여 말씀하실까요? 이제는 발보다 본 뜬 것이 더 중요하다고 우기고 있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쫓는 그래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와 함께 하는 오늘이 되세요.



어린이에 관한 가장 멋진 글(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칼릴 지브란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아이를 기르는 일을 주제로 쓰인 시 가운데 가장 멋진 글임이 틀림없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그 자체를 갈망하는 생명의 아들, 딸이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서 태어났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사랑은 줄지라도, 당신의 생각은 줄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들의 육신은 집에 두지만, 그들의 영혼은 가두어 둘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의 정신은 당신이 갈 수 없는 미래의 집에 살며, 당신의 꿈속에는 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들을 애써 닮으려 해도 좋으나, 그들을 당신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선 안 된다. 왜냐면 인생은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며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활이 되어 살아 있는 화살인 당신의 아이들을 미래로 날려 보내야 한다. 사수는 영원의 길 위에 있는 표적을 겨냥하고 하느님은 그 화살이 날렵하게 멀리 날아가도록 그분의 능력으로 당신의 팔을 구부린다. 사수의 손에 들어간 힘을 당신은 기뻐하리라. 왜냐면 하느님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 자리에 있는 활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How can you say, ‘Show us the Father’?
Do you not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The words that I speak to you I do not speak on my own.
The Father who dwells in me is doing his works.
(Jn.14.9-10)

 

 Everlasting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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