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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 6일 야곱의 우물- 요한 13, 31-33ㄱ.34-35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6 조회수566 추천수3 반대(0) 신고
영원에서 영원으로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1-­33ㄱ.34-­35)

옛날에 어머니 말을 무척이나 듣지 않는 청개구리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청개구리는 아들 때문에 너무도 상심하여 급기야 병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내가 죽고 나면 냇가에 묻어 다오." 하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늘 거꾸로만 하던 아들 청개구리라 그랬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들 청개구리는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이라 말씀대로 냇가에 묻었습니다. 그래서 청개구리는 비만 오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개굴개굴' 우는 것이랍니다. 너무도 잘 아는 '효'에 관한 우리나라의 설화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길어온 이야기 또 하나.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키울 수 없어서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고아원에서 서럽게 자란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수성가를 했답니다. 혼자 시골에서 근근이 생활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보고 싶어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구박했고, 화상으로 일그러진 아버지를 창피해했습니다. 외롭게 살던 아버지가 위독하게 되어 동네 사람들이 아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습니다. "제발 화장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아들은 그 유언마저 뿌리치고 화장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잘해 준 것이 뭐 있다고 때마다 찾아와 벌초하는 수고를 하게 하느냐고.
아버지를 화장한 뒤 아들은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어릴 적 자신의 불장난으로 집에 불이 났고, 아버지가 자신을 껴안고 나오면서 화상을 입었다는 것, 아버지한테는 아내를 구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으며 화상을 입은 아버지가 자신을 키울 수 없어 고아원에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통곡했습니다. 아버지를 평생 원망한 것도 모자라 유언도 듣지 않은 때 늦은 후회! 아버지는 뜨거운 것이 싫었습니다.
청개구리는 늦게라도 유언의 참뜻을 깨닫고 무덤을 옮길 수 있었지만 이 아들의 아버지는 이미 재가 되어 사라졌기에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압니다. 온 세상이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이야기는 바로 오늘의 복음으로, 수난과 죽음을 앞둔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5)고 당부하신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제대로 사랑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3)고 기뻐하던 아담은 금지된 나무 열매를 먹고는 그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고, 그 아들 카인은 동생을 죽이는, 사랑의 역사라기보다는 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대주제는 여전히 죄와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 위에, 그리고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배신만 하는 이스라엘을 두고도 하느님의 외침은 이러했습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호세 11,8) 인간에 대한 이런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사랑을 수없이 말하지만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떠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요한 13,34) 그렇게 사랑하라고.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희로애락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을 어떻게 돌보고 인내하고 가꾸셨는지를 살아 계실 때는 채 깨닫지 못했지만 돌아가신 뒤에 깨달았습니다. 스승님이 그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라는 소명을….

그분은 무지하고 말귀 못 알아듣는 그들을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분은 성가시게 구는 군중들에게 친절하셨습니다.
그분은 더 많이 배우고 가진 것이 많은 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시기하지 않고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면서도 뽐내지 않았으며
보잘것없는 사람들한테도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오천 명의 배고픔을 채워주시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겟세마니에서 죽도록 힘들 때 함께 기도하지 않은 제자들에게 성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에게 앙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일을 기뻐하지 않았고,
철부지 어린이 같은 이들에게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분은 간음한 여인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당신의 죽음 앞에 도망갈 제자들을 믿고
그들이 당신의 길을 따르리라 바라며 유언을 남기고
모든 수난을 견디어 냈습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은 이러했습니다. 유언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내 방식대로 하다가 나중에 통곡하는 일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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