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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빨 다섯 개 보이게 . . . . . . . [서웅범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6 조회수889 추천수10 반대(0) 신고

                                 

 

 

저희 성당 근처에는 종합병원이 하나 있어

자주 그곳을 방문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는 그곳에서 두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한 아이는

수태 6개월 만에 700g 정도밖에 안 되는 상태로 조산되어

인큐베이터에서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체칠리아였고,

 

또 한 아이는

교통사고로 온몸이 마비가 된 열 살짜리 로사였습니다.


체칠리아는 아직 세상 이름도 갖지 못해

아빠의 성씨만이 적혀있는 인큐베이터 속에 누워 있습니다.

너무 빨리 조산된 바람에

폐가 정상기능을 하지 못해

인공호흡기를 꽂은 상태였습니다.

 

생존 가능성이 매우 적은 상태라고들 하지만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발길질을 하며 놀듯

가끔씩 가는 다리를 버둥거리는 체칠리아는

분명 귀한 생명체였습니다.

 

갓난아기의 꼴도 채 갖추지 못한 그 작은 생명을 보며

마치 시공을 뛰어넘어

다른 세상의 존재와 만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아직은 엄마 뱃속에 있어야 할 체칠리아를 보면서

생명경시 풍조 속 세상 사람들에게

와서 이 생명을 보라! 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저 핏덩어리를

어느 누가 존엄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교통사고를 당한 로사는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은 구했지만

얼굴 밑으로는 모든 것이 마비가 된 상태입니다.

사고 후 한 달이 지나면서 보고 듣는 기능은 어느 정도 돌아왔지만

그 외 모든 것은 다 막히고 굳은 상태입니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손발에도 감각이 없습니다.

엄마 말에 따라 눈을 크게 뜨거나 입을 벌리는 것으로

살아 있음을 표시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엄마가 신부님이 기도해 주러 오셨으니

감사의 표시로 눈을 크게 뜨고

이빨 다섯 개 보이게 입을 크게 벌려보라 고 하니

로사가 그리합니다.

 

힘들지만 애써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는 그 모습이

너무나..

너무나... 

예뻤습니다......,

 

그리고 애처로웠습니다.

 

자기가 치던 피아노곡을 들려주면

서럽게 흐느끼며 눈물을 흘린다는 로사.

 

주일학교 아이들이 부르는

참 좋으신 예수님성가테이프를 들려주며...

 

좋으신 예수님께서 로사에게

위로와 기쁨 건강이 되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자주 찾아 올 것을 약속하며 병실을 나올 때

엄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를 향해 입을 벙긋해 보이던 로사는

꼭 건강해져야만 합니다.


핏덩이 체칠리아가 인큐베이터 속에서

보장되지 않은 삶을 처절히 이어가고 있는 이 순간에

 

그리고 로사가

의식은 또렷한데

움직일 수도 의사를 표현할 수도 없어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이..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 [사목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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