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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희보다 먼저 박해 받았음을 알고 기억하라.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12 조회수559 추천수5 반대(0) 신고

 

 

<너희보다 먼저 박해 받았음을 알고 기억하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한 15,18-21)



  한참 사회에서 일할 나이인 3,40대 남성 교우님들이 직장생활하면서 부딪히는 종교 문제 때문에 갈등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대외적으로 관련된 부서에 근무하면서 부정한 일을 마주치게 될 때, 신앙의 갈등을 겪게 됩니다. 양심에 비추어 보아도 어려운 일인데 남들은 잘도 눈감고 넘어 갑니다. 그럴 때 조그만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그래도 참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좋지 않은 짓을 할 때에는 꼭 누구를 달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에 같이 빠지자는 떼거리 근성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뿌리가 없는 먼지 같아서 이리저리 조그만 이익을 쫓게 됩니다. 그리고는 뒤에서 꼭 한마디 합니다. 사람이 쫀쫀하다던가, 그러려면 수도원에 들어가 살 일이지 왜 사회에 나와서 혼자 잘난 척하는지 모르겠다는 둥 쑥덕공론을 해댑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왕따를 시켜 버립니다.


  그러다보면 실적은 남보다 뒤떨어지고, 일이 어렵게 꼬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상사는 은근히 부정을 종용하게 되고, 제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인사에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이 때 받는 심리적 갈등은 정말 심합니다. 심지어 식사 때 성호경 긋는 일도 만만치 않게 되어 버립니다.


  이런 일로 자주 고해성사를 보다보면 부담감이 앞서게 되어, 자칫 냉담에 빠지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실제로 묵상 나누기를 해 보면 이런 경험들을 거의 모든 교우 분들이 이야기합니다. 개인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뻔히 성사거리가 되는 줄 아는데도 눈앞의 이익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께서 나보다 먼저 이런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을 알라고 오늘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만이 그런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필두로 하여 많은 성인성녀와 교우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런 고난을 겪고 또 이겨내셨습니다. 만약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가 세상에 속한 것처럼 그들과 똑 같이 행동한다면 세상은 기뻐할 것입니다. 너라고 별 것 있겠느냐며 쾌재를 부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현대에 와서는 그 박해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심리적으로 갈등하게 만들고 위축되게 하여 과감히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이런 악의 무리에 빠지지 말고 굳세게 박해에서 이겨내도록 우리를 이 세상에서 뽑아 주셨습니다. 그 무리에 섞이지 말라고 솎아 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일반 사람들에게 천주교 신자는 원래 절대로 이런 짓은 안할 것이라는 작은 믿음을 주어야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유혹이 계속 된다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타협해 왔기 때문에 점차 더 큰 요구를 하는지 모릅니다. 애당초 씨도 안 먹힌다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되는데 왜 너는 안 되느냐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는 곤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명심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을 단순히 선악이분법으로 갈라 이원론적으로 이해하려는 순진한 합리주의에 빠져서는 곤란합니다. 이런 사고는 인생과 역사현실을 통찰하지 못하고 쉽게 풀어보려는 싸구려 합리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탓을 자신이 책임지려하지 않고 악마에게 돌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순하게 이원론적 이분법에 빠져 남에게 탓을 돌릴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악습의 탓이며, 자신이 책임져야할 죄의 탓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선한 것이고, 좋은 것이며, 찬양하고 기뻐해야할 신비”라고 말하면서 주님께서 은총으로 건져 내 주실 것을 믿고, 자신의 내부에서 진리의 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는 것을 향해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자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서 계시면서 우리를 뽑아내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지어다. 아멘.


 



Non ho piú catene ma solo piange
il cuor lonta no da te
Non ho piú catene perché so che
il tuo amor so per me

E so che un di ti rivedrò
Ti stringero ancor

Guardo il ciel e so, dove sei cosa fai
E dovunque andrai senti rai

I sospiri miei che per ter sol per te
Parlano d'amor, del mio amor

Non ho piú catene ma solo piange
il cuor lontano da te
Non ho piú catene perché so che
il tuo amor é so per me

E so che un di ti rivedrò
Ti stringero anc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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