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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 / 이인주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13 조회수1,057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랑의 뿌리


사랑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사랑을 하면 그 안에서 힘이 나온다. 사랑은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아름답다. 사랑에는 단계가 있다고 본다. 특히 동양 사람들에 비해 서양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도 잘 분류를 해 놓고 있다. 이를테면 사랑을 에로스로부터 시작해서 필라델피아 그리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이에 비해 동양 사람들은 동양화를 보듯이 날카로운 면 보다는 두리 뭉실 한 가운데 평평한 산에 비유라도 하듯,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사랑을 모두 대변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사랑을 보도록 하자.

남녀의 사랑을 일컬어 에로스의 사랑이라 한다. 세상에 남녀 간에 사랑이 없다면 참으로 암담할 것이다. 물론 가톨릭 사제가 이런 것을 논한다면 좀 그렇지 않겠는가 하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랑은 사랑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여러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남겨 간의 사랑 안에서도 천박한 사랑이 아니라 승화된 사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사랑일 것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등산을 하였고, 바위산을 오르다 실족하여 사랑하는 여인이 돌연 시공을 달리했을 때, 그 함께 한 남자는 그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밤을 새웠다. 그래도 해결책이 나오질 않아 그 사랑하는 여인을 산에 장사지내고 내려오려 하니, 도저히 내려올 수 없어 그곳에 머문 지가 여러 날이 되었고, 결국은 자신도 그 자리에서 먼저 시공을 달리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갔다. 윤리적으로 어떤 것이 먼저인가 따질 소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분명히 윤리적인 차원을 넘어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싶다. 아마도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 서로 남녀의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간다면 쉽게 이혼하거나 헤어지는 그런 것은 없지 않겠나 싶다. 

가족 간의 사랑을 일컬어 필라델피아의 사랑이라고 한다. 특히 부자나 모자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암수 간의 사랑은 쉽게 변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미와 새끼간의 사랑은 각별하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각별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예를 들면 어떨까 싶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처럼 해외여행을 떠났고, 어렵게 만든 자리였는데 안타깝게도 항공기 사고가 났다. 긴박한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들은 아직 숨이 살아있었다. 문제는 빠른 시간 내에 비행기 잔해 틈에 끼어 있는 몸을 빠져 나가지 않으면 비행기가 곧 폭발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살아 있는 그 생명마저도 보장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때 엄마는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아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공간을 만들어 주며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준다. 그러면서 가능한 한 빨리 비행기로부터 멀리 가라고 한다. 그러나 아들은 뒤를 돌아보기 바빠 주저한다. 그때 엄마는 욕을 해대며 아들이 멀리 떨어질 것을 요구하고, 그 사이 아들도 엄마도 함께 운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는 힘이 다 빠져 그곳을 도저히 빠져 나갈 힘이 없고, 그래서 그 자리에 맥을 놓는 순간 펑하고 불기둥과 함께 검은 연기 위로, 마치 한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가는 듯 날아오른다. 이것이 필라델피아가 만드는 모성애이다.  

아가페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이며 둘을 포함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을 말함이다. 어떤 것이 위다 아래 다를 따지기 전에 사랑의 꽃 중의 꽃을 아가페의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이유는 에로스가 남녀 간의 사랑을 대표하고, 필라델피아가 가족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라면, 아가페의 사랑은 온 우주를 향한 존재들을 향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가페의 사랑은 전 우주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 시대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생명을 공적으로 바친 인물들이 많다. 거룩한 순교이다. 이 분들은 왜 그러면 자신을 하늘과 백성들을 향해 불사르고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그만큼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설산에 눈 쌓이듯 쌓은 결정체이고, 소외되고 처진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다 봉헌하는데서 나온 결과물들이다. 사랑은 그럼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행동하는 가운데 참 사랑은 우리 주위를 변화시킬 것이다. 지금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사랑을 살려거든 온몸으로 살라고 말이다. 그것만이 참 사랑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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