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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우리를 친구로 불러 주셨습니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14 조회수863 추천수7 반대(0) 신고

 

 

<우리를 친구로 불러 주셨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요한 15,9-17)



  시인이신 구상님과 화가 이중섭님의 우정은 유명합니다. 구상 시인이 학창시절 첫 시집을 내자 이중섭이 삽화와 표지 그림을 그려 주어 화단에 첫 발을 내밀었습니다.

 

  평안도 출신인 이중섭 화가가 동경에서 미술 공부를 마치고, 태평양전쟁으로 파리 유학의 꿈을 접은 그는 원산에 정착하여 화실을 내었습니다. 그곳에서 해방되기 4개월 전에 일본서 홀로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온 일본 여인 마사코와 혼인을 올리고 신혼살림을 차립니다. 해방 후 이북 땅에는 소련이 진주하고 공산당 치하에서 갖은 고난을 치룬 그는 육이오 동란이 터지자 제주도로 피난 내려와 피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지독한 가난에 화구가 없어 우편엽서나 담배 종이에 못이나 연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원산 출신으로 공산치하에서 갖은 고난을 겪다가 동란 전에 대구에 먼저 정착하고 있던 구상이 결핵으로 여러 번 입원을 반복할 즈음, 그 소식을 듣고도 수중에 가진 것이 한 푼도 없었던 이중섭은 천도복숭아 그림을 그려 뒤 늦게 병문안을 합니다. 무척 미안하게 생각하며 간신히 내어 놓는 그 그림, ‘한 입 베어 먹으면 무슨 병이든지 낫는다는 천도복숭아’ 그 우정 덕택으로 병이 나았다고 구상 시인은 언제나 말합니다.


  동란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처와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이중섭을 보다 못해 구상이 어렵게 선원증을 구하여 일본으로 보내 줍니다. 그러나 중섭은 밀입국자가 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특히 보증을 서준 친구 구상에게 누를 끼칠 것을 염려하여 일주일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피 붙이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구들 우정과 조국을 배반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는 후에 죽을 때까지 가족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채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우정은 자신을 희생해가며 상대를 배려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이 축일인 마티아 사도는 예수님과 공생활을 함께한 제자로서, 이스카리옷 유다를 대신하여 열 두 제자인 사도단에 뽑힙니다. 사도가 되는 것은 모두 박해를 각오하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그 당시 사도들은 영광스러운 자리만은 아니었습니다. 갖은 희생과 고난을 겪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것은 베드로나 사도 바오로의 여정을 통해 증명이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도들도 모두 죽음으로 박해를 당했습니다. 이처럼 힘든 자리에 주님께서 뽑아 주신 것입니다. 그는 기꺼이 그 사명을 따랐습니다. 개인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한 것입니다.


  우리도 천주교회에 입교한 것을 우리 스스로 택한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박해를 받고 고난을 받아야 할 자리임에도 주님께서 뽑아 주셨다는 순명의 정신, 겸손의 정신을 지녀야 합니다. 내가 택한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가 아니라, 주님께서 뽑아 주신 것이니 끝가지 지켜 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고맙게도 친구로 불러 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친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고난을 이겨내고 생명을 바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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