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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걷기 기록, 묵주기도 기록을 세우며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16 조회수792 추천수3 반대(0) 신고
             걷기 기록, 묵주기도 기록을 세우며





※이 글은 지난해 오늘 30여 명의 피붙이·겨레붙이·인연붙이들에게 보낸 내 '가족 메일' 중의 일부입니다. 참고하실 분도 계실 것 같아 소개합니다.  


보낸날짜 2006/05/16 22:28:26   [GMT+09:00]    
보낸이 지요하 <jiyoha@dreamwiz.com>  

요즘 걷기 기록, 묵주기도 기록을 세우며

†. 사랑·평화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오전에 어머니와 함께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먹을거리 등 물건 사는 일, 성당 '할머니합창단' 연습 일로 성당에 가시는 어머니를 내 차로 모셔다 드리는 일, 어제 학생양복점 '아이비클럽'에서 찾아온 규왕이의 여름 교복과 여름 체육복을 상설시장 안의 '일진라사'로 가지고 가서 명찰 새기는 일, 그리고 군청 농협에 가서 논산의 '엘리트' 양복점에 한결이의 여름 교복 두 벌 값 17만원을 입금해주는 일 등 몇 가지 소소한 일들을 했더니 오전이 다 날아가 버렸네. 적이 허망하다 싶네. 그 소소한 일들에 비해서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되지 싶고….

그래도 일진라사에서 규왕이의 옷에 명찰 세 개가 새겨지는 동안 오래 신앙생활을 쉬고 계시는 손영규(베드로) 어른과 일진라사 사장님께 하느님/천주교 얘기를 많이 해드렸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 것 같네.

오늘은 '충남의 예술인' 작업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아침나절부터 몸을 움직이는 일로 김이 새서 그 작업은 내일로 미루고 편지나 쓰기로 했네. 나는 몸을 움직일 일이나 신경이 분산되는 일이 있으면 어느 정도 긴장의 밀도를 유지해야 하는 작업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하는 약점이 있네.

오후에도 시간은 많이 있지만 오후 시간은 내가 운동을 하면서 기도를 하는 시간인 데다가 옛날부터 오후에는 작업이 잘 되지 않는 약점도 있고….    

★천안 김영자씨 천주교로 개종

내가 가지고 있는 농협 통장들 중에는 우리 규애 통장도 있네. 내가 그 통장에다 돈을 넣으면 규애가 서울에서 카드로 필요한 금액을 빼 쓰곤 하지. 그래서 규애의 인출/지출 현황을 훤히 알 수 있네.

그런데 최근 그 통장에는 천안의 김영자씨가 입금한 5만원이 기록되어 있네. 천안 김영자씨는 마누라의 공주사대부고/공주교대 동기로 가장 친한 사이인데, 전화로 우리 규애의 통장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 드렸더니 규애에게 5만원을 입금해주신 것일세.

그런데 그것보다 더욱 고맙고도 반가운 일은 개신교 신자였던 김영자씨가 천주교로 개종을 한 일일세. 지난 4월 22일 공주 갑사에서 있은 공주사대부고 동창 모임에 갔을 때 김영자씨로부터 직접 들은 일일세. 김영자씨는 개신교 신자들인 시집 식구들과 함께 오래 개신교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시어머니 별세를 계기로 개종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 그 바람에 지금 큰 시누이와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하네.

몇 년 전 태안에 와서 학암포에서 하룻밤을 잔 적이 있는데, 다음날 주일 아침에 우리 집에 와서 우리 가족과 아침식사를 하고 함께 성당에 갔던 기억이 있네. 생전 처음 성당에서 미사를 지내면서 색다른 느낌을 얻었던 것 같네. 개신교에서는 접하지 못하는 '성찬의 전례'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그리고 미사곡을 비롯한 천주교의 성가들을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얻었던 것 같네.

미사 후에 '축성례'와 '영성체' 등에 대해 질문을 해서 내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던 기억이 있는데, 나는 김영자씨가 우리 가족의 권유를 쉽게 받아들이고 함께 성당으로 발걸음하는 순간부터 어떤 가능성을 느꼈던 것 같네. 김영자씨에게 어느 정도 지적 탐구심이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지.

우리 가족과 함께 생전 처음 성당에서 미사를 지낸 경험(기억)과 천주교에 대한 탐구심이 잘 작용을 해서 마침내 스스로 천주교 성당으로 걸음을 하고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을 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큰 기쁨 속에서 감사와 존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네. 인생의 최고 가치에 대한 탐구, 종교에 대한 탐구를 가능케 하는 인간의 지적 탐구심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보배로운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네.

김영자씨가 천주교 교리를 잘 배우고 드디어 세례를 받게 되면 만사 제폐하고 마누라와 함께 천안의 성황동 성당에 가서 축하를 해줄 생각이네. 마누라의 친정은 물론이고 마누라의 오랜 지기들 중에 천주교 신자가 별로 없어 이상한 아쉬움과 허전함을 많이 느껴온 나로서는 김영자씨의 개종 소식이 정말 큰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네.      

★묵주기도 최고 기록

지난 13일(토요일)을 즐겁게 기억하네. 그 날 일본에서 귀국한 한결이는 데리러 논산에 가고 오면서 묵주기도를 무려 85단이나 했네. 운전을 하면서 한 기도로는 최고 기록일 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 인하대학병원에 입원한 제수씨 일로 병원에 머무르던 때를 제외하고는, 즉 평상시에 한 기도로는 최고 기록이 아닐까 싶네.

하루에 묵주기도를 85단이나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로 여겨지네. 물론 지난해 12월 인하대학병원에 있을 때는 매일같이 묵주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헤아릴 수도 없었네. 식사할 때와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한시 반시도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네. 자면서도 기도를 했네. 누워서 잠을 청할 때도 묵주기도를 하다가 잠들고, 중간에 잠이 깨면 다시 기도를 하고…. 정말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나는 그때 비로소 기도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듯싶네.

그때의 그 깨달음(사실은 그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네)이 나로 하여금 운전을 하면서도 기도를 하게 만든 것 같네. 전에는 먼길 운전을 할 때 그 시간이 참 아까웠는데, 이제는 아깝지가 않네. 논산을 가고 오려면 보통 다섯 시간 정도를 소비하는데, 그냥 자동차 운전만으로 다섯 시간을 소비하다면 얼마나 무의미하고 아까울 것인가. 그런데 그 시간을 꼬박 기도를 하니, 내 영혼에 얼마나 큰 유익인가. 현실 생활의 몫을 다하면서 내 영혼의 이익을 추구하니 얼마나 값진 일석이조인가.

물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먼길 운전을 하면서 이런저런 좋은 생각들도 많이 하지만, 한가지 생각을 오래 할 수는 없는 일…. 그리고 이런저런 세상 잡사와 관련하는 것이기 쉬운 생각들에 골몰하는 것보다는 기도가 한결 유익한 것이니, 나는 아예 출발을 할 때부터 한 손에 묵주를 쥐고 기도를 시작하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묵주기도를 많이 하다보면, 분명히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순으로 매단 지향을 두고 하지만, 내가 지금 몇 단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것일세. '5단 묵주'를 가지고 한다면, 묵주를 쥐고 있는 내 손을 한 번 보는 것으로도 쉽게 알 수가 있지만, 운전을 할 때는 5단 묵주를 사용하기가 곤란하여 '1단 묵주'를 사용하다 보니, 종종 내가 지금 몇 단을 하고 있는지 잊을 때도 있는 것일세.

그래도 운전을 하면서도 묵주기도를 할 수 있는 1단 묵주가 있는 것이 여간 다행이 아니다 싶네. 그리고 우리 가톨릭 교회에 걸으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또 하루 종일이라도 기도를 할 수 있는 묵주가 있는 것이 정말 여간 다행이 아니다 싶네. 우리에게 묵주를 주신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님께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네.                    

★걷는 즐거움과 행복

묵주기도는 자칫 성모 마리아님께 드리는 기도로 알기 쉬운데, 그것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일세. 묵주기도는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일세. 왜 묵주기도가 중요하고도 가장 훌륭한 기도냐 하면, 바로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일세.

우리는 물론 갖가지 많은 기도를 하느님께 직접 바치기도 하네. 나 혼자 바치기도 하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직접 하느님께 기도를 하기도 하네.

하지만 나 혼자, 또는 우리끼리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과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은 분명 어떤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네. 나는 매일같이 묵주기도를 하면서, 혼자 어느 먼 곳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할 때마다 나 혼자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또 상기하면서 신비한 희열 같은 것을 체득하기도 하네.

어머니와 함께 기도한다는 생각, 그 사실적 질감 때문에 길을 걸으며 더욱 열심히 묵주기도를 하게 되고…. 기도는, 그리고 묵주기도는 이렇게 좋은 것일세.

엊그제(14/주일) 오후에는 장명수 해변을 오래 걷다가 근흥면 안기리(굼틀)를 돌아오는 길을 밟았는데, 묵주기도를 무려 45단이나 했네. 이것도 신기록이 아닐까 싶네. 그만큼 많이 걸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네.

나는 매단의 '신비' 지향을 분명히 하고, 영광송 다음에는 꼭 '구원을 위한 기도'를 하고, 또 한 꿰미를 새로 시작할 때마다 십자가 부분 '사도신경'부터 다시 하기 때문에 한 꿰미의 기도 시간이 긴 편이네. 그래서 20단을 하는 동안 시오리를 걷네. 그러니까 45단을 했다면 근 40리를 걸었다는 얘기가 되네. 시간도 내처 2시간 40분을 걸었고….

장명수 해변을 오래 걸으면서는 두 가지 기억과 상념을 즐겼네. 하나는 옛날 소년 시절 세레나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말미잘을 캐러 장명수 갯벌을 오래오래 걸었던 일…. 그때 우리가 어디까지 걸었었는지 되우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아련한 동화 속의 길, 그 지점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네. 또 하나는 청년 시절 이래수 형님과 함께 심야에 해변으로 나아가 모래톱 위에 앉아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그 지점이 어디쯤일까 헤아려보는 일…. 그 지점도 확인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어느 한 지점에서 방향을 돌려 안기리 굼틀 동네로 들어가서 오래 전부터 빈집으로 남아 있는 래수 형님의 집을 보니, 어느 정도는 그 지점을 짐작해볼 수가 있더군.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삭선리 황소고개와 괴봉산 오솔길을 밟아보았네. 옛날 소년 시절 여러 번 나무를 하러 갔던 곳이었네. 언젠가는 누님과 누이들도 함께 가서 솔방울을 주워온 곳…. 나로 하여금 <나무꾼의 추억>(지난해 <월간문학> 7월호에 발표하여 임헌영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은)이라는 단편소설을 쓰게 만든 각별한 추억이 있는 곳….

옛날 우리 소년 시절에는 황소고개를 흔히 '황새고개'라고 불렀고, 괴봉산 길을 '구멍고개'라고 불렀지. 그 길을 참으로 오랜만에 걸으며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게를 지고 시오리나 떨어진 산으로 나무하러 다녔던 내 소년 시절을 추억하며 이상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현상도 경험했네.        

괴봉산 오솔길을 타고 넘으면 원북면 양산리로 가는 길과 소원면 시목리로 가는 길로 나뉘는데, 앞으로 그 두 개의 길을 다 밟아볼 생각일세.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묵주기도의 묘미를 즐기며….

(묵주기도를 할 때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안에 들어 있는 도합 20가지의 묵상 지향들을 생각하면 정말 신비로움을 느끼게 되네. 기도를 하며 묵상 지향들이 제시해주는 성서 안의 사건이나 어떤 상황들을 눈앞에 그려보게 되면 더욱 진지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되네. 우리 가톨릭 교회에 대한 긍지와 애정도 배가되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런데 매일 묵주기도를 40단 이상 바치며 먼길을 걷다보면, 내가 소년 시절 어린 몸으로 어떻게 이 먼길을 와서 나무를 해갔을까 신기한 느낌도 갖게 되네. 어린 학동들이 매일같이 10리 20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정말 찬탄을 하지 않을 수 없네. 소아비만이니 소아당뇨니 하는 것은 아예 이름조차 없었던 그 시절에 대한 이상한 그리움인 듯도 싶고….

그리고 매일 걷기 운동을 할 때마다 하느님께 감사하곤 하네. 당뇨 환자임에도 매일같이 두세 시간씩을 걸어도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의 강한 체력과 튼튼한 다리를 내게 주신 하느님께, 그리고 어머니와 마누라에게도 감사하네. 내가 매일같이 오후에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처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나로 하여금 매일같이 운동을 하게 만든 내 당뇨병에 대해서도….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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