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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겉모습만 볼 것인가? 아니면 통찰해 볼 것인가?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17 조회수692 추천수3 반대(0) 신고

 

 

<겉모습만 볼 것인가? 아니면 통찰해 볼 것인가?>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16-20)



  요한복음 저자가 한 단어를 얼마나 세심하게 선택해 사용했는지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요한저자는 네 복음서 중에서 가장 적은 종류의 단어 수(약 1011개)만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몇몇 단어는 아주 특징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했습니다. 표징, 진리, 생명, 빛, 세상, 들어 올림, 영광, 믿다, 증언하다, 파라클레토스, 로고스 등등입니다.


  오늘 대목에서도 잘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보다’라는 동사가 앞뒤로 두 번 쓰였는데, 그리스어 원문에는 앞 뒤 두 단어가 서로 다릅니다. ‘보지 못할 것이다’에서 쓰인 ‘보다 동사’는 테오레오(theoreo)가 ‘보게 될 것이다’에서 쓰인 ‘보다 동사’는 호라오(horao)가 사용되었습니다.


  문학적, 시적 기교로 볼 수도 있겠지만 두 동사는 그 뉘앙스가 다릅니다. ‘테오레오’ 동사는 겉으로 드러난 겉모습을 구경, 관람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극장을 뜻하는 티어터(theatre) 단어가 여기서 파생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호라오’ 동사는 그저 바라보는 것을 넘어 통찰, 직관하는 의미가 더 담겨 있습니다. 보다 깊이 있게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깨닫는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뉘앙스를 염두에 두고 다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이 새겨들을 수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구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너희는 나에 대해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세히 말씀해 주셨는데도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아니 전혀 상상을 못한 이야기만 하시니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제자들이 따라 말할 때도 서로 다른 동사를 그대로 쓰면서도 입으로만 따라할 뿐 그 속뜻까지는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이어 생겨날 일들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니다. 제자들이 울며 애통해할 것이나, 그들의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주십니다.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미리 다 알고 계셨고,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는 것을 뒤에 가서라도 깨닫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제자들이 ‘호라오’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기쁨이 저절로 따라 올 것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이 어떤 단계인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끌어 주신 ‘호라오’ 단계에까지 이르렀는지, 아니면 아직도 구경꾼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구경꾼 단계에 머물고 있다면 울며 애통해 하겠지만, ‘호라오’ 단계에 이르렀다면 기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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