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친구야 너는 아니 - 아픔과 고통의 차이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18 조회수1,263 추천수6 반대(0) 신고

 

<친구야 너는 아니> ... 윤경재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요한 16,20-23)

 

 

 

 

 

 

 

오늘은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감상하면서 묵상할까 합니다.

 

 

 

 

  <친구야 너는 아니 - 이해인>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친구야 봄비처럼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픈 내 맘 아니

 

향기 속에 숨겨진 내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 걸 너는 아니.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혼잣말로 하시던 얘기가

 

자꾸 생각이 나는 날,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정말 우리의 아픈 마음을 토닥이며 어루만져주는 그윽한 시입니다. 먼저 제목에서

 

시인은 친구를 부릅니다. 친구는 어떤 사람입니까? 무엇인가를 나누고 싶은 존재입

 

니다. 무엇인가 대가를 계산하고 사귀는 사이가 아닙니다. 또 언제나 좋고 아름다운

 

 것, 기쁨만 떠올리지도 않습니다. 가끔은 서로 토라지기도 합니다.

 

 

   친구는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가르쳐주어야할 대상도

 

 아닙니다. 그가 모르고 있어서 나만이 아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친구는 모든 슬픔과 기쁨, 고난과 행복을 함께 나누는 사이입니다

 

.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

 

 

 

  지금 화자는 어머니께서 늘 혼잣말로 말씀하시던 것을 새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

 

다. 예전에 그 말씀을 들었을 때는 청승이라고 눈을 흘겼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나

 

이를 먹어가면서 달라졌습니다. 자신에게도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바라보면

 

서 알 수 없는 분노와 원망과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고통이 생겨

 

서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울음 터뜨리게 만드는지 몰랐습니다. 행복하게

 

 살아도 짧은 이 세상, 왜 굳이 조물주께서는 사람들에게 아픔과 고통과 불행을 만들

 

어 주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화자는 눈을 들어 온 우주를 바라다보게 되었습니다. 시선을 자신

 

과 인간세계에만 두지 않고 자연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인간만이 창조주의 작품

 

아니라, 이 지구 위에 몸담고 있는 모든 것들 산과 들과 바다, 꽃과 나무, 비와 바

 

람,온갖 짐승과 새들도 역시 창조주 하느님의 작품인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의 별들과 우주도 모두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그 자연 안에서 꽃이 피고 지듯이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변화를 일부분만 잘라 놓

 

고 보면 마치 모든 것이 고통처럼 비치게 됩니다. 사실은 고통이 아니라 진통일 수

 

 있는데 우리 눈에는 고통으로만 보이게 됩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또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주면서 양식이 되고, 우리 마음 안에 기쁨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러기에 우리에

 

게는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온갖 비바람과 추위를 견뎌 내어

 

야 하는 것입니다. 햇볕을 향해 외쳐야 하고, 땅 속에서 수분과 양분을 빨아드려야

 

 합니다. 아무런 수고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수고의 결과가 꽃이며 열

 

매입니다.

 

 

 

  이제 화자는 절실히 깨닫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겪어 왔던 모든 아픔이 사실은 창

 

조주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게 내재되어 있는 아픔과 같은 것이라고 느꼈습니

 

다.

 

 

 나만이 아픈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모든 피조물, 산과 돌과 바람, 봄비마저도 아픈

 

 것입니다.

 

 

 

  봄비는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아파서 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겪는 이별이 슬퍼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그렇다고 봄비는 자신의 슬픔을 강요하거

 

나 분풀이 하듯이 억세게 내리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얼어붙은 만물을 풀

 

어 주려고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내립니다.

 

 

 

  화자도 친구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애틋한 마음을 전달하

 

고 싶을 뿐입니다. 얼어붙은 친구의 마음을 녹여주고 싶은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겪

 

게 된 갖은 오해로, 미움으로, 원망으로, 고난과 수고로 닫힌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풀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화자는 그런 마음을 자연에서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평생 살아오시면서 몸

 

으로 깨우친 것을 이제 조금이나마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에서도

 

 어머니처럼 향기가 풍겨 나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비록 세월에 눌려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또 다른 은총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 마음에서 정화된 눈물이 엑기스 되어 향기를 뿜고 있습니다. 꽃이 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이 기뻐 친구에게도 전해주는 것입니다. 친구도 그런 기쁨을 누리기 바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말해주는 신비한 목소리를 모든 사람이 다 알아보고 알아듣지는 못합니

 

다. 그러나 가만히 새겨들으려고 한다면 누구나 창조주의 깊은 뜻과 사랑을 알아보

 

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 안에서 정화가 일어나 향기를 온 세상에

 

 뿌릴 수 있게 됩니다. 그가 꽃이 되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게

 

 됩니다.

 

 

 

* 추신; 묵상이 너무 길어져 생략하려 했는데 그래도 꼭 써야하겠기에 다시 추가합

 

다.

 

 

 

<아픔과 고통의 차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아픔(pain)과 고통(suffering)에 대해서 한 번 묵상해 볼 필

 

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단어가 지니는 차이점을 잘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

 

다. 이 시에서 꽃이 피고, 열매 맺으며, 봄비가 내리는 것을 아픔이라고 표현하였습

 

니다. 왜 구태여 고통이라고 말하지 않고 아픔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순수함을 강조

 

하기 위해서 순수 우리말을 썼을까요? 시적 운율을 위해서일까요?

 

 

 

  그보다는 나무가 맺는 꽃이며, 열매는 서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무에서 핀

 

꽃이 더 아름답고 훌륭한지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에게 본래 주어진 대로 꽃

 

피고 열매 맺을 뿐입니다. 그때 나무가 꽃 피우고 열매 맺기 위해 겪는 것은 아픔입

 

니다.

 

 

 

  고통은 이와 다릅니다. 누구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오는 것은 고통입니다. 좀 더

 

멋진 집과, 옷과, 직위, 재산, 부유, 능력, 지혜, 지식을 자랑하는 것들에게서 느껴지

 

는 결핍, 소외, 열등감에서 오는 것은 고통이 됩니다. 고통은 이차적인 것입니다. 본

 

래적인 것이 아닙니다.

 

 

  물론 시인께서 이것을 염두에 두고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대상

 

과 비교에서 오는 고통은 실제가 아닙니다. 허상입니다. 그것은 아픔이 아닙니다. 그

 

래서 시인이 고통 대신 아픔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진정 “아픔(pain)은 하느님께서 피조물에게 진통으로써 주신 것”이라고 고

 

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별의 아픔도, 자신의 부족함이 주는 아픔도, 성장과정에서

 

 오는 아픔 등등이 모두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부정합니다. 아픔과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오

 

해합니다. 심지어 그 아픔을 받아들이는 것이 잘 못 된 것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픔(pain)의 선물을 고통(suffering)과 혼동합니다. 하느님께서

 

는 우리에게 고통까지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고통(suffering)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허상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아픔을 함께 겪자고 하시

 

면서 앞장서 걸어 가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달게 받아들이신 것입니

 

다.

 

 

 

   예수님께서는 남들과 비교에서 오는 고통을 겪으신 것이 아닙니다. 능동적으로 그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으신 분인데도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아픔마저 거부하려 한다면 그것은 순명이 아닙니다. 아픔마저도 주님께서 주신 선

 

물로 알고서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긴 묵상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친구야 너는 아니 - 이해인 ♬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친구야 봄비처럼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픈 내 맘 아니 향기 속에 숨겨진 내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걸 너는 아니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혼잣말로 하시던 얘기가 자꾸 생각이 나는 날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