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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로운 교제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19 조회수595 추천수3 반대(0) 신고

 

 

<새로운 교제>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요한 16,23-28)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를 듣고서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 두 말씀은 알쏭달쏭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수수께끼라고 칭하십니다. 여기서 쓰인 파로이미아(paroimia)는 정답을 가르쳐주기 위해 수수께끼를 내는 것입니다. 마치 스무고개 놀이하는 것처럼 정답을 알아맞히도록 의문이 들게 하여 답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답을 맞히면 서로 즐거워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당신이 어떤 분인지 최종적으로 확신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모두 청원기도와 감사기도를 주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하느님을 부르고 기도하는 것과 똑같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청원해도 모두 다 들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신이 아버지와 동등하시다는 선언입니다. 여태껏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만 보고 지내 왔기 때문에 그분 안에 함께 계시는 신성을 미처 보고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인성을 취하신 분만 보아 왔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드님이 동등한 분이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이 선언은 강생과 들어 올림의 신비에다가 당신의 신원까지 밝히시는 선언입니다. 하늘나라 어전에서 계시다가 오신 것이 아니라 직접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느님께로 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 자체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예수님과 관계 맺고 교제해 왔듯이 앞으로는 하느님 아버지와 직접 교제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먼듯했던 거리감이 없어지고, 좀 더 친근하게 하느님께 다가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묵상>

 

당신 생각 속의 하느님만 원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의 실존을 원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생각이나 피조물을

까마득히 초월해 계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신성과 다름 앞에 자신을 열고

하느님의 본성이 그대로 당신에게 들어오도록 허용할 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비추고 맛을 내고

당신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빛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무사무욕, 초연함,

당신 마음의 기쁨이 주는 영적 비전,

늘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비록 다른 일에 빠져 있을 때라도

하느님께 대한 당신의 목마름은

하느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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