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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 20일 야곱의 우물- 루카 24, 46-53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20 조회수672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바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루카 24,46-­53)

아이들에게 하느님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수염이 긴 할아버지를 그리듯 예수님의 승천을 생각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신자들은 천사들이 옹위한 가운데 흰 옷을 입고 구름을 밟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이는 사도행전에서(1,6­11) 묘사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시체의 소생이 아니라고 했을 때 느끼는 것처럼 승천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고 하면 혼동을 느낄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사화는 공관복음서 저자마다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고 약속하시면서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이는 마태오 복음사가가 우리에게 주지시켜 주고 싶은 `임마누엘`입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요셉은 꿈을 통해 다시 듣습니다(1,23). 공생활을 통해 우리와 함께하신 예수님은 죽음을 당하신 뒤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끈을 놓지 않으신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에서는 더 짧게 묘사되는데 예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16,19-­20).

루카복음에는 손을 들고 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시는데, 이는 열왕기 하권 2장에 나오는 엘리야의 승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갑자기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이를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영이 제자 엘리사에게 내립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제자들이 경배하는 가운데 예수께서 어떻게 하늘로 들어 올려지시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분을 그들에게 보내주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24,44-­53).

 

루카복음의 후편인 사도행전은 같은 저자임에도 승천을 다른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승천하신 날이 사도행전에서는 부활 후 40일 되던 날인 데 반해 루카복음에서는 부활날입니다. 승천하신 장소도 다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올리브 산(1,12)이고 루카복음에서는 베타니아 근처(24,50)라고 합니다. 마태오복음에는 갈릴래아에 있는 산(28,16)에서 일어납니다. 또한 요한복음에 의하면 승천은 예수님이 원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심으로써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17장 참조).

 

이렇게 같은 일을 복음서가 다르게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승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위해 다음 내용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에 대한 전기와 같은 양식으로 기록되었지만 초기교회의 신앙 실천을 반영하는 문서입니다. 그 문서는 20세기에 사는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사람들을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복음서의 기록들이 역사적 사실 보도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시대의 역사·문화적 여건 하에서 복음서 저자가 처한 상황과 그들의 신앙을 전달하려고 하는 대상을 고려하면서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승천을 통해 표현하고 싶어하는 복음서 저자들의 공통된 본질 요소는 예수가 인간 개체의 역사적 개별성을 넘어서 하느님의 보편성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믿음입니다. 이제 하늘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인간 예수의 실천을 하느님의 일로 알아듣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보여준 삶은 시간과 공간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하느님의 일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승천은 또한 예수가 지도자로 이 세상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지닙니다. 메시지를 발생시킨 사람이 군림하면 그 메시지의 내용은 왜곡되고 사람들은 복지부동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를 잃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신앙인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떠나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부활 후에도 섬기는 분으로 남아 계시다는 뜻입니다."(서공석, 「예수-하느님-교회」 중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의혹과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부활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설명하시면서 안심시키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24,47­-48) 하시며 그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심으로써 여전히 그들이 당신의 제자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못난 그들을 당신의 증인으로 인정하십니다. 그들 몸소 체험한 용서와 사랑을 그들도 모든 이들에게 드러내고 실천함으로써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제자들의 마지막 주님 체험입니다. "우리는 사냥꾼의 그물에서 새처럼 벗어났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벗어났네."(시편 124,7)

 

마음의 해방을 맞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고 루카복음은 끝을 맺습니다. 기쁨으로 예배하고 찬미하는 삶은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해피 엔딩입니다. 그들을 사로잡고 있던 배반·의혹·불신·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복음과 함께 기쁨 중에 생활하는 제자들의 이야기, 복음이 세상 곳곳으로 전파되는 이야기는 사도행전에서 계속됩니다.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이사 52,13)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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