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21 조회수1,206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7년 5월 21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I have told you this so that you might have peace in me.
In the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courage, I have conquered the world.”
(Jn.16.33)
 
제1독서 사도행전 19,1-8
복음 요한 16,29-33
 
“일전에 동창 신부가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우는 아이 때문에 모든 신자들의 시선이 거기에 쏠리게 되었다. 때를 쓰며 우는 아이와 난처한 모습에 안절부절 못하는 엄마의 모습, 주변의 신자들은 어서 유아방에 가라고 무언의 눈짓을 보내지만 그 엄마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아이가 미사 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려면 아무래도 유아방 보다는 신자들과 함께 있는 성당 안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 엄마는 우는 아이를 잠시 밖으로 데리고 나가더니 이내 성당으로 다시 들어와 아이를 달래며 함께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였다.(중략)

존 웨스터호프는 각 개인이 신앙의 단계를 체험된 신앙부터 주체적인 신앙까지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신앙의 크기가 커지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체험된 신앙’이라고 말한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성당에 오면 ‘좋다, 거룩하다, 기쁘다, 감사하다 등등’의 체험은 나중에 주체적인 신앙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중략)

이처럼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어린이는 하느님의 품 안에서 성장할 때 올바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건한 성당의 미사 시간, 굳이 때를 쓰는 아이를 데리고 성당에서 미사를 참례하는 부모의 마음은 바로 이런 신앙을 미리 아이에게 저축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제 동창 신부가 교구의 청소년국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들을 인천교구 주보에 적은 글입니다. 이 글에 큰 공감이 갔습니다. 왜냐하면 유아방이 결코 아이들의 신앙심 형성에 도움을 줄 것 같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서 성당에 나왔고, 그때 시끄럽다고 유아방과 같은 구석진 곳을 쫓겨나지도 않았습니다(당시에는 유아방이 있지도 않았지요). 어머니의 작은 꾸짖음에 잠시 동안이라도 조용하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교육의 반복으로 인해 이렇게 신부까지 되었습니다.

본당 신부가 되어 지금 우리 성당을 볼 때 아이들이 너무나도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는 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성당을 찾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어른인 자신들이 미사 참석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어린이들을 유아방으로 내쫓아내고, 성당에 가면 시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아이가 크면 성당에 보내겠다면서 부모가 함께 냉담 하는 모습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종교심을 없애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에 오셔서 진정한 평화를 주시는 분이며, 세상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분을 못 만나게 하는 것.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린이가 성당에서 떠들고 장난친다고 야단치지 맙시다.



삶, 단 한 번 뿐인 것처럼(박성철, '느리게 그리고 인간답게' 중에서)



프랑스 철학의 거장 볼테르, 그는 계몽주의 시대를 이끌어 간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인생을 열심히 산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지켜봐 왔던 그의 친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며 물었습니다.

"자네에게 24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겠는가?"

볼테르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세상에 딱 한 번뿐인 것처럼!"

우리가 너무도 자주 잊고 사는 것, 삶은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덜컥 겁이 나곤 합니다. '과연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 때문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도 영국의 시인 에드워드 영의 말을 되풀이하곤 합니다.

나이 30이면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지고, 40이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 겠다 싶어 인생 계획을 다시 세우고, 50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인생을 뒤로 미루나 싶어 부끄러워하며 다시 다짐하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작심, 작심, 또 작심하다가 어느 날 진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생을 다 보내고 무덤으로 들어가네.

시간은 잘도 흘러갑니다.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뒤돌아보면 시간은 올림픽 100미터 경주의 질주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자기 삶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순 없습니다. 내 삶의 시계가,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감정과 미련을 가진채 끝을 향해 간다면 그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째깍 째깍', 지금도 내 삶의 시계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달려 가고 있습니다. 이제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만 할 듯합니다.

딱 한 번뿐인 삶이라는 걸 명심하며…….
 
 
 
“Do you believe now?
Behold, the hour is coming and has arrived
when each of you will be scattered to his own home
and you will leave me alone.
But I am not alone, because the Father is with me.
(Jn.16.31-32)
 
 허브향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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