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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65) 하회마을에서의 하룻밤 / 전 원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23 조회수846 추천수8 반대(0) 신고

 

 

 

 

                          하회마을에서의 하룻밤

 

 

                                                     글쓴이: 전 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대구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안동 내륙지방에 있는  하회(河回)마을을 들렀습니다.

하회란 문자 그대로 낙동강 줄기가 마을을 둘러싸고 태극모양으로 굽이쳐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회탈의 본고장이기도 한 이 마을은,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아름다운 한옥마을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춰갈 때 그나마 살아남아 그 명맥을 보존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일상이 바빠지고 척박해질수록 웬일인지 기억 속에 잊혔던 그 마을이 자꾸만 생각나던 터라,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경주 불국사를 돌아 하회마을을 향했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여행을 하듯, 차에 장치된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 낯선 밤길을 뚫고 하회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미 칠흑 어둠 속에 잠긴 하회마을은 마치 연극이 시작되기 전 어둠 속에 잠긴 무대처럼 불쑥 찾아간 불청객을 위해 새로운 연출을 기다리는 듯했습니다.

 

 

늦은 저녁식사와 함께 민박집에서 주는 농주 한 잔을 하고, 늦은 밤 토담으로 둘러쳐진 골목길을 거닐었습니다. 한옥마을 밤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방향도 목적도 없이 이리저리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 다녔습니다.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상큼한 흙냄새가 늦은 밤 축축한 밤공기를 타고 전해집니다. 비온 뒤 맑게 갠 짙푸른 밤하늘에는 아름다운 별들이 초가지붕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냅니다.

하룻밤을 지내면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처지라서 시간의 흐름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늦은 시간에야 한옥집 작은 문간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습니다.

한 평 남짓 작은 토방에서 느껴지는 가난함이 내 안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삶의 짐을 털어 내버린 듯 깊은 잠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습니다.

그 옛날 어느 양반댁이었을 이 집이 이제 민박집이 되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내 주고 있습니다.

 

 

참 오랜만에 늦도록 깊은 잠을 잤습니다.

한옥의 낡은 띠살문에 아침 햇살이 빛바랜 한지를 투과하여 눈부시게 방안 가득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잠을 깼지만 게으름을 피우며 방 안에 누워 한옥이 주는 정취를 느껴보았습니다.

 

바깥에서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민박집 주인 할머니 소리가 들립니다.

신발을 끌며 화장실을 가는 사람,

수돗가에서 왁자지껄 떠들어 대며 세면을 하는 학생들의 소리,

바깥인 듯, 안인 듯 온통 분주한 세상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옥이 생기있게 느껴질 때는 이렇게 안과 밖이 차단되지 않는,

시끌한 인간의 냄새와 숨결이 느껴질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방 안에 누워서 듣는 바깥사람들의 소리가 싫지 않습니다.

 

한옥은 지을 때부터 목수들의 직관과 숨결로 지어진다고 말합니다.

흙과 나무의 숨결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익힌 목수들만이 제대로 한옥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집을 지을 좋은 흙을 찾아내고 나무를 골라 나무결과 트집을 다스리며 마치 함께 호흡을 하듯 집을 짓습니다.

 

오늘날처럼 시멘트와 유리 등 화학약품으로 처리된 죽은 재료로 건축물을 세워서 공기의 흐름을 막고 소리를 차단시켜 고립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만나고 소통하도록 만든 것이 한옥의 특징입니다.

 

지나가는 바람을 막지 않고 처마에 흐르는 빗물을 안마당까지 끌어 들여 자연의 소리를 듣고 느끼도록 만든 것이 한옥입니다.

흙과 나무를 일으켜 세우면 집이 되고 스러지면 다시 자연이 되는 것이 한옥입니다.

 

이렇듯 한옥은 인간이 자연과 만나 하나가 되어 함께 호흡하는 공간입니다.

비록 방은 비좁고 초라하지만 한옥 방에 한 평 자리 잡고 누우면 온통 넉넉함이 배어 나오는 것은 자연과 소통하도록 만들어진 한옥의 구조 때문입니다.

 

그날 하루 마치 수사관이 되어 온 마을을 수색하듯 여기저기 집집마다 기웃거리며 하회마을의 모습을 알뜰하게 마음에 담아보았습니다.

비록 하회마을이 점차 영화나 연속극의 셋트장처럼 변해가고 있고,

손님을 부르는 아크릴 입간판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그나마 한옥의 아름다움과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마을입니다.

 

 

하회마을을 한눈에 잘 보려면 마을 맞은편  부용대(芙容臺)에 올라가야 합니다.

연못에 떠오른 연꽃을 뜻한다는 부용대는 한옥마을을 휘감으며 물길을 따라 병풍처럼 기암절벽으로 우뚝 서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입니다.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 때문에 서울로 향하는 시간을 늦추며 기어이 부용대에 올랐습니다.

 

눈 안 가득 들어오는 하회마을의 풍경은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어우러져 마치 통통하게 살진 새들이 다정하게 내려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한 촌락을 이루며 가족과 이웃이 정을 나누며 살았을 것입니다.

 

'외로움' 이니 '소외' 니 하는 말은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서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옛사람들에게는 낯선 말이었습니다.

이런 말들은 사람들의 생활환경이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면서 자주 회자되는 현대의 언어들입니다.

아파트나 빌라 등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생활공간은 더욱 촘촘해졌지만 사람들의 외로움은 더욱 커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통교를 도와줄 통신매체들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한나절이면 어디에나 이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쩐지 사람들의 소외감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공간에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면서, 한걸음 거리의 옆집 사람도 더 이상 이웃이기를 거부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어느새 경쟁관계로 바뀌고 사람과의 만남도 하나의 거래 수단일 뿐입니다.

자연으로부터 고립되고  인정(人情)이 끊어진 사회일수록 사람들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늦은 시간 숨막히는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명동거리에 빽빽이 들어선 외로운 군상(群像)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시대마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역할이 있었듯이, 이 시대의 교회가 해야 할 가장 큰 사명을 생각해 봅니다. 비록 우리가 한 세기 전으로 돌아가 한옥을 짓고 촌락을 이루며 살 수는 없지만, 그렇수록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아 보입니다.

 

 

삶을 더 깊이 나누는 이웃공동체를 엮어 내는 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정의 물꼬를 트는 일,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병든 자연 환경을 살려 내는 일,

인간이 자연의 친구가 되어 더불어 살게 하는 일......

 

하회마을에서 보낸 하루는 모처럼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린 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마을 훈장님으로부터 어려운 문제를 받고 돌아온 듯,

제 맘속에 어떤 숙제가 하나 남아 있는 듯합니다.

꺼질 듯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한옥마을은 비단 저뿐만 아니라 이 시대 우리 교회에 이런 삶의 숙제를 넘겨 주는 것 같습니다.

미래 역사가 그 숙제검사를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ㅡ말씀지기에 실린 편집자 레터 전문 ㅡ

 

****  전 원 신부님은 월간 매일묵상집 <말씀지기>의 주간으로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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