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5월 25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24 조회수846 추천수11 반대(0) 신고

 

 

                              



         5월 25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요한 21장 15-19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도 아닌 사랑>


성장기 자녀를 슬하에 둔 부모님들, 요즘 자녀교육 문제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우리가 처한 자녀교육과 관련된 풍토나 현실은 정말 독특하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교육현실이 얼마나 특별했으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우리의 기형적 교육현실을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답니다.


유럽의 한 국영 TV방송국에서는 우리나라의 한 고3수험생 하루 일과를 밀착취재 해갔는데,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세상에 이런 일이’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은 다들 한 목소리로 ‘한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는가?’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기형적인 교육구조와 체제 안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청소년들입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정서적, 심리적 압박과 그로인한 왜곡된 가치관은 미래 우리 사회의 큰 고민거리 중에 하나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 때문에 속이 다 무너져 내립니다.


“엄마랑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해!”


“부모가 되가지고 해준 게 도대체 뭐야?”


“차라리 죽고 싶어!”


서운한 감정이 복받쳐 올라와 주체를 못합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들 바라보며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적극 공감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그 ‘사랑도 아닌 사랑’ 때문에 얼마나 우리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는지 모릅니다. 그릇된 사랑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오직 ‘사랑’이란 이름하에 그렇게 노력했는데, 상대방은 그 사랑이 절대 사랑이 아니라 고통일수도 있습니다. 괴로움일수도 있습니다. 지긋지긋할 수도 있습니다. 도망가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기 때문에 아니면 약자이기 때문에 싫다고 말도 못합니다.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표현도 못합니다. 자꾸 그런 식으로 나가면 서로 좋을 것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도 못합니다.


이런 ‘사랑도 아닌 사랑’의 종착역은 폭발입니다. 지울 수 없는 상처입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기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대로 된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기보다는 서로 교류되는 사랑입니다. 열심히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에 눈이 먼 사람들, 눈에 콩깍지가 낀 사람들의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수시로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귀찮을 정도로 사랑을 확인합니다. 물어보고 또 물어봅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떠나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합니다. 혹시라도 자신을 향한 일편단심에 금이 가고 있지는 않은지 노심초사합니다. 딴 사람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들, 무뚝뚝한 사람들에게는 곤혹스런 일이 되겠지만 진심으로 열렬히 사랑하면 다들 그렇게 되는가봅니다.


너무 지나치면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라면, 그 사랑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사이라면 꽤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 사도와 예수님 사이가 그랬습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연인 이상의 관계로 설정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언제 어디서건 예수님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떠나 갈까봐 늘 안절부절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자주 확인했습니다.


그러던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향한 베드로 사도의 사랑을 확인하십니다. 확실히 해두기 위해 세 번씩이나 사랑을 확인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나와는 무관한 사람, 그저 낡은 역사책 속에 등장했다가 무대 뒤로 사라져간 위인 정도 되시는 분은 아닙니까?


우리의 예수님은 우리와 매일 대화를 나누셔야할 살아계신 한 인격체로서의 주님이십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매일 우리와 그분간의 사랑을 확인해야하는 대상으로서의 주님이십니다. 연인으로서의 주님이십니다. 영원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의지할 대상으로서의 주님이십니다.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신부 ▣ 

                  

 

 

       

                            

                         [주여~! 나를 가엾이 보아 주소서:가콜릭성가 22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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