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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존재의 질(質)" --- 2007.5.25 금요일 성 베다 사제 학자 기념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25 조회수809 추천수11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5.25 금요일 성 베다 사제 학자 기념일 

                               

사도25,13-21 요한21,15-19

                                                            

 

 

 

"존재의 질(質)"



사도행전을 읽으며 깊이 묵상하는 순간

‘참 팔자가 센 바오로의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시 사전을 펼쳐 ‘팔자가 세다’라는 뜻을 찾아보니

‘기막힌 운명을 타고나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사람 눈에 기막힌 운명이지

믿음의 눈 있으면

기막힌 하느님 섭리의 손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팔자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어떻게 충만히 존재하느냐는 존재의 질입니다.

 
찬가 중 두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물은 당신 뜻에 의해 생겨났고 존재하나이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나라로 옮겨 주셨도다.”


두 구절 모두 부르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물은 물론 우리는 주님께서 불러주셔서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합리주의 철학의 시조 데칼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언명했고,

존재론의 철학자들은 이를 뒤집어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라고

옳게 말했습니다.

 

다음 유다인 랍비 여호수아 헤쉘은

다음과 같이 이를 바로 잡았습니다.


“나는 불림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위의 찬가 구절과 일치하고

우리의 성소에도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새삼 '존재는 관계'라는 진리를 실감합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 처럼

무명의 꽃이 이름을 불러 줌으로

비로소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는 내용과의 비교가 적절합니다.


그렇습니다.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불림을 받으므로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우리들입니다.

 

살아있다고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삶의 질을, 존재의 질을 결정합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충만히 존재하는 삶이며

사랑이 얕아 질수록 빈약한 존재의 삶입니다.

 

그러니 사람마다 존재의 질은 천차만별입니다.


만일 우리가 세례로 불림 받지도 않거나,

수도자로 불림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까요?

 

흑암의 권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고

무명(無名)의 사람들 되어 방황하지는 않을까요?


오늘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복음의 베드로의 삶,

인간적으로 보면 참 기구한 운명입니다.

 

주님을 만나 팔자 센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팔자가 센 사람들,

바로 수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파란만장한

팔자 센 인생을 살아가는 신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하느님의 성경이란 생각이 듭니다.

 

기막힌 운명 속에

하느님 은총의 발자취들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인도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 끈 꼭 붙잡아야 구원입니다.

 

이미 주님과 공동운명체가 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들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베드로와 바오로의 삶에서

주님을 빼버리면 무엇이 남을까요?

 

우리의 삶에서

주님을 빼버리면 무엇이 남을까요?

 

완전히 무(無)요 캄캄한 어둠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단한 삶을 비추는 위로와 희망의 빛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며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믿음의 사람들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다음 시편의 고백입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시편23,4).


주님과의 깊어가는 사랑과 신뢰의 관계 중에

충만한 존재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사랑의 관계를 확인하신 후

‘내 양들을 돌보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베드로의 삶의 길을, 삶의 의미를 확고히 잡아 주신 후,

부활하신 주님은 마지막으로

‘나를 따라라.’ 명령하십니다.

 

언제나 주님을 따를 때 비로소 충만한 존재의 삶입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잔치에 우리를 불러 주셔서

당신 말씀과 성체를 선사하시어

충만한 존재로 살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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