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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을 받아라(요한복음20,1~31)/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27 조회수1,104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7년 5월 27일 성령강림주일

 

마태복음에서는 육안으로 외부에서 보고,

요한복음에서는 영적으로 안에서 보는 복음이기 때문에

요한복음에서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말씀차원으로 보셔야 은혜가 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자연현상인 지진이 일어나고,

천사들이 와서 무덤 입구의 돌을 굴려내고

예수님이 부활한 모습을 보여주셨고,

 

요한복음에서는

무덤에서 이미 돌이 치워져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예수님은 죄(원죄)가 없기 때문에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나자로 부활을 보면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돌을 치우라고 명령하시고,

예수님께서 "나자로야 나오너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무덤에 있던 나자로가 나오는데

수위와 끈으로 묶여서 살아 나오는데

이 끈은 율법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풀어주어라." 라고 말씀 하셨을 때

율법이 예수님의 복음 말씀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지진과 천사들이 예수님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굴려내는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로써 부활한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시공간이 없는 복음이기 때문에

이미 돌이 치워져 있었고,

예수님의 몸을 싸셨던 수건과 염포는 개켜져 있었습니다.

 

이 뜻은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매어 있지 않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 하느님이

예수님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이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으로 성체로 하나가 되면은

우리안에 계신 그리스도님께서

우리들의 영혼과 육신(몸)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심령의 부활은

우리들 마음 안에 있는 돌을 치워야 됩니다.

 

우리들 스스로 우리 안에

율법이라는 돌로 가득 차 있는 우리 마음을 버리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안에 들어오셔서

사랑의 하느님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안에 있는 미움, 시기, 질투, 분노 이런 것들을

사랑으로 몰아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길밭, 돌밭, 가시밭을 말끔히 치우시고 옥토를 만들어

100배, 60배, 30배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의

열매를 맺은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빈 무덤(죽음)- 부활(생명)(요한 20,1-10)

 

무덤도 구약인 육안차원으로 볼 때는

공동묘지인 무덤을 의미하고

공관복음인 심안차원으로 볼 때는

내가 살아 있어도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죽어 있는 사람이고 무덤입니다.

 

요한복음인 영차원에서 볼 때는

내 심령 안에 생명의 말씀이 이루어져 있지 않으면

내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무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이루어져서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우리 몸은 무덤이 아니라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육차원에서

무덤은 공동묘지에 있는 무덤을 의미하지만

요한복음인 영차원에서는

우리 안에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안 계시면

우리들의 육체가 무덤인것입니다.

즉 회칠하는 무덤인 것 입니다.

 

1  주간 첫날, 아직 이른 아침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으로 가서 보니

   무덤에서 돌이 치워져 있었다(부활증거).

 

2  그래서 그는 달려가서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알렸다.

    "사람들이 무덤에서 주님을 빼돌렸습니다.

   어디다 옮겨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무덤으로 갔다.

 

4  둘이 같이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달려 먼저 무덤으로 갔다.

 

5  그러고는 몸을 굽혀 염포가 놓여 있는 것을 들여다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곧 뒤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염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부활 증거).

 

7  머리를 덮었던 수건은 염포(율법을 상징함)와 함께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복음을 상징함)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왔던 다른 제자도 들어와서 보고 믿었다.

 

9  사실 아직도 그들은 그분이 죽은 이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서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10  그래서 제자들은 집(육)으로 돌아갔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다( 요한 11-18)

 

여자는 교회를 상징하며

나타나다는 뜻은 계시와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자인 교회 성도들에게

말씀으로 성령으로,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시공간이 있는 복음이기 때문에

예수님 부활을 소문을  퍼뜨리고 밖에서 일어난 사건을 쓰시고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도하셨던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안에서 일어나는 시공간이 없는 복음이기 때문에

교회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11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가까이 밖에 서서 울고 (마태 5,4) 있었다.

    울면서 무덤 안으로 몸을 굽히고

 

12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천사가 앉아 있는데,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누웠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천사들이 "부인, 왜 울고 있소?" 하고 묻자 마리아가 말했다.

    "사람들이 우리 주님은 빼돌렸습니다.

    어디다 옮겨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신기한 것, 진리,신비).

    그러나 예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부인, 왜 울고 있습니까?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마리아는 그분이 동산지기인 줄로 생각하고 말했다.

     "당신이 들어냈거든 어디다 옮겨 놓았는지 말해

    주세요.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16  예수께서 "마리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돌아서며 히브리 말로 "랍부니!" 하였다.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1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만지지 마시오. 가서 형제들에게 이르시오.

    '나는 내 아버지요 여러분의 아버지, 내 하느님이요

    여러분의 하느님이신 그분께로 올라간다'고"

 

설명-  '만지다'는 뜻은 헬라말로 '하프토마이'라는 말인데,

       '불을켜다' '만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아직 아버지께 가시기 전이니까.

너희들은 더럽기 때문에 만지지 말라는 해석도 있지만

예수님은 선과 악이 없기 때문에

이 지상에 오셔서 악인이나 선인이나 구별하지 않고

다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는 신령체로 계시기 때문에

육안으로 볼 수 없고 영안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만져봐서는 모르기 때문에

만지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공관복음인 루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그 모습으로 다시 재림하시겠다고 하셨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으로 재림하시기 때문에

말씀을 읽어서 말씀이 내 안에 이루어져서

말씀의 열매인 사랑이 왔을 때

우리들은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18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가서 제자들에게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고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전했다(증거).

 

 

제자들에게 나타나 사명을 주시다(요한 19-23)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셨던 갈릴래아에서 나타나셨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시공간이 없기 때문에

장소가 아닌 사도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복음선포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19  그 날, 곧 주간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 모여 있던 곳의 문을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시어 한가운데 서서

    "그대들에게 평화!" 하고

 

20  말씀하시며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했다.

 

설명- 육에 있을 때는 수난과 환난 슬픔이지만

      영차원에서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기쁨인 것입니다.

      임신한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때

      그 산고는 고통과 슬픔이지만

      새로 태어난 아이를 볼 때는 기쁨인 것입니다.

 

21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들에게 평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그대들을 보냄니다."

 

22  그리고 숨을 불어 넣어 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시오.

 

설명- 창세기 2,7에서

      하느님께서 아담을 진흙으로 만드시고

     숨(성령)을 불어 넣어서 생령이 되게 해서 사람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지어서

실락원했던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을

예수님께서는 새 창조하시기 위하여

숨(성령)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라고 하시는 것은,

신약의 백성들을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들 안에 들어오셔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기쁨.평화

인내.친절.선행.진실.온유.절제등의 내적인 열매로 계시는 것입니다.

 

성당에 부활의 초도 성령강림 주일이 지나면 치우는 것은

성령은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안에 열매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 영세자의 세례때는 부활초에 불을 켜는 것입니다.

 

성령을 거센 바람으로 표현하고 불꽃으로 표현하며 또한

사랑의 일치로 표현하는데 성령의 거센 바람은 우리 마음을

뒤흔들어 육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인 영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성령의 불꽃은

우리들 마음 안에 있는 어둠과 죄를 불타 없어지게 해주시며

성령 강림축일 때 붉은 초에 붉은 제의등은 성령을 표시하며

 

구약에서는 떨기나무에서 불이 타는 기적을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 주셨으며 성령은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와 하나로

일치 시켜 주시며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성령 강림 주일에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하시는

복음을 읽고,구약에서는 오순절이 있는데

오순절이라는 말은 오십일이란 뜻이고,7 × 7 + 1 =50인데 

7은 야훼계 문헌에서는 완전 숫자이고 천국을 상징하는 숫자인데

히브리어와 그리스어(헬라어)에는 비교급과 최상급이 없기 때문에

7를 두번 반복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이며

1은 사제계 문헌에서 완전 숫자이고 천국을 상징하기 때문에

오순절을 50으로 표현하며

 

신약에서는 1은 빛,말씀 즉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7 × 7 + 1=50 은 성령 강림의 대축일을 말하는데 예수님이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사십일 후에 예수 승천 주일이고

오십일째에 성령 강림 대축일인데

49일에다가 하루를 더하여 오십일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과 때도 우리 말에는 같지만 헬라원어에는 '호라'라는 말은

예수님에 시간과 때를 말하는데 수난 받고 죽고 부활하신 때를

말하는 것이며(마태복음24,36;요한복음 2,4;17,1)

 

'카이로스'는 하느님의 시간과 때를 말하는데

하느님 때는 오늘이며 현재이며 1일이며(마태26,18 ;마르코13,3;

루카20,10;요한5,4;묵시록22,10)

 

'크로노스'는 사람들의 시간과 를 말하는데 사람의 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는 시간과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25,19;요한12,35;로마7,1;묵시록12,14)

 

성령강림 및 구약의 오순절은 영적으로 볼 때는 부활하신 예수님

진리 성령으로 계시는 말씀의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과 때가

오늘이며 칠일 이며 오십일이 되는 것입니다.

 

23  누구의 죄든지 그대들이 용서해 주면 용서받을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예수(영)와 토마(육)(24-29)

 

토마는 육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육에 있으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받으신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믿음 고백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디디모스라 하는 토마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뵈었소" 하자

    그는 "그분 손에 있는 못자국을 눈으로 보고,

    그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고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모여 있는데

    토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와 한가운데 서며

    "그대들에게 평화!" 하셨다.

 

27  그러고는 토마에게 말씀하셨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살펴보시오.

    그리고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시오.

    그리하여 믿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시오."

 

28  토마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2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나를 보고야 믿었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이들은 복됩니다!"

 

         맺음말

 

30  예수께서는 이 책에 적히지 않은 다른 많은 표정도

    제자들 앞에서 행하셨다.

 

31  이 일들을 적은 것은 여러분이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또한 믿어서

    그분 이름으로 생명을 얻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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