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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안의 '장명수' 바다를 소개합니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28 조회수637 추천수5 반대(0) 신고

                       태안의 '장명수' 바다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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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자만사(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만난 사람들)' 2007년 6월 모임 장소인 충남 태안의 '장명수' 바다에 관한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장명수는 태안읍의 남산리, 근흥면의 두야리와 안기리, 남면의 진산리와 동무하고 있는 바다로서 아담한 호수 같은 모양의 개펄 포구입니다. 태안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로서(옛날에는 천수만의 끄트머리인 '정주내'가 가장 가까운 바다였음), 제가 태안군청 바로 옆 진흥아파트 집을 나서서 묵주기도 세 꿰미(15단·약 45분)를 하면 닿을 수 있습니다.

1980년 봄 제 선친이신 지동환(池東煥·안셀모) 님의 시집 『長命水散調』가 출간되었습니다. 우리 고장에서는 첫 번째로 나온 개인 시집이었지요. 그 해 회갑을 맞으신 아버님께 제가 자형의 도움을 얻어 시집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두고도 결혼도 하지 못하고 객지를 떠도는 불효를 조금이라도 만회해 볼 요량으로 아버님의 습작품들을 몰래 가져다가 소설가 천승세 선생께 보인 다음 시집을 만들어서 아버님의 회갑상에 올려 드렸지요. 그때 깜짝 놀라고 당혹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꿈같다'고 하실 정도로 기뻐하셨던 아버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7년 전 일이라니…!

그 시집을 만들면서 「장명수散調」라는 시를 시집의 표제로 삼았습니다. 「장명수散調」는 '장명수'라는 바다 이름의 유래, 즉 전설을 시로 형상화 작품이지요. 그 전설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자는 장명(張明)이라고도 하는데, 그건 전설 속의 이름이니까 확실치가 않지요. 아버님은 아예 한자를 쓰시지 않고 한글로만 '장명수'라고 하셨는데, 제가 시집을 만들면서 표제를 『長命水散調』로 했지요.

제 선친의 회갑기념 시집이며 우리 고장 최초의 개인 시집인 『長命水散調』의 표제 작품은 <태안문학> 제17집(2006년 하반기호)의 '장명수' 관련 특집에도 소개되었는데, 오늘 굿 뉴스 게시판에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확실한 이유로 제 선친의 시 한 편을 굿 뉴스 게시판에 올릴 수 있도록 안배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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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지동환(池東煥) 님의 시



                                                  장명수 散調


                                                                                                       지 동 환(안셀모)


두륭산 북 벼랑에
쌓였던 눈 녹으면
봄은 한발 성큼 다가든다
진달래 개나리
망울 벙을라지고
아지랑이 하늘하늘
언덕 위 노송나무도
구붓이 조을고 섰다
두리 바위 틈길 삐져
시냇물도 그만 놓여
지즐대며 흘러간다

원소동 외진 마을
눈 시린 낮닭소리
돌문이 휘둘 돌아
잘룩진 여울
아낙네 빨래 소리
봄이 자진다
화순벌 천천히 지나
용오리 용담(龍潭) 들러
잠깐 머물고
내친걸음 중막 기슭
산허리 안허리 굽이돌아 재게재게
지체 없이 달려가
용뿌리에 다다르매
장명수 水門 안
늪 푸른 機水 샛잠 들고
뱀장어 참게들
짭짤한 바닷물에 알 싣는다

이름만은 가히 좋다
그럴싸한 장명수
그 뿌리 알 수 없지만
장명이란 土富 있어
一穫 萬頃 큰 꿈 길러
南田 北沓 錢糧 馬匹
다 긁어모아
일대 모험 한판에 걸지라

장명 바다 밀물길
좁은 목 골라잡아
몇 백 보 안 되는 잘룩진 곳에
둑을 쌓으니
한 달에 보름밖에
밀물이 들지 않는
질펀한 갯벌 땅이
옥토로 폼을 바꿔
국화 이파리처럼
뻗어 들어간
넓고 넓은 간사지 갯벌 땅이
논이 되고 밭이 되어
小作 農雇들은
구름처럼 모여들고
수백 수천
명줄이 새로 트이더라

작은 부자는
근(勤)하면 된다지만
큰 부자야 어디
그런 모험 아니고야
어이 그리 될까보냐
천하에 다시없는 큰일 이룩한
장명이
그전 재산 몇 갑절로 늘어나고
한눈으로는 다 볼 수 없으리만큼
넓은 땅을 차지한
장명 큰 부자
근방의 도편수란 도편수는
다 불러모아
원뚝 안에다
고래등같은 기와집 짓고
수백 명 머슴 농일꾼 거느리고
수백 천 석 나락 보리
오곡 거둬들여 떵떵거리겄다

허나 이 장명 부자
勤儉한 건 좋았지만
너무 되얄지고
인색한 게 탈이여
광 구석엔 언제나
곡식 그득했건만
隣近에 饑饉 들어도
눈썹 하나 까딱 않더라
놉일꾼들 생피 골즙
품삯조차 깎아먹는 판에다
달챙이 호미 하나 잃어버려도
불벼락 내리고
동지섣달 설한풍 수수깡 한 다발
어림없다네

無女 獨男 일찍 장가들여
손자 두엇 봤지만
아들은 夭折하고
靑孀 며느리
같이 사는데
착한 며느리
혼자 달보고 눈물짓고
장명 시아비
모르는 척
시치미 떼더라

어느 날 山寺에서 한 도승 내려와
탁발 펴고 시주 공양 권하였건만
머슴 놉일꾼 부려
한창 봄 두엄 퍼내던 장명이
거치적거리는 중 때문에
일손 늦어질까 봐 느닷없이
감 썩은 두엄 한 쇠스랑 푹 찍어
도승 바랑 속에다
처넣어 주며 하는 말
"이게 바루 쌀이 되고 조가 되구
보리두 되는 것이니
가져가게나"

장명이 쇠스랑 메고
늘근늘근 눅처지고
도승은 두엄 바랑 메고
말없이 집 돌아가는데
원뚝 너머
남쪽 하늘에서는
간물 끓는 소리 요란하더라

이 광경 문틈으로 숨어 본
靑孀 과부 착한 며느리
얼른 입쌀 한 함지박 퍼 들고
샛문 나와
도승 뒤쫓아 앙달 걸음 재촉한다
"여보셔요 대사님 한번만 살펴주오"
도승은 바랑에서 두엄 쏟고
쌀 넣으며 말하기를
"내일 밤 아기들 데리고
子時 전에 아무도 모르게
뒷동산으로 올라가시오
내 말 지키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 하오"
며느리 아린 눈 들어 도승 행적 쫓자 하니
도승은 간 데 없더라

달빛 어린 밤하늘
빛무놀만 생한 가운데
마파람은 돋아 불고 바다는 더욱 끓는다
착한 며느리
때가 되자 어린것들 안고 업고
옷가지 패물보따리 머리에 이고
뒷문으로 빠져나가
허위허위
뒷동산으로 올라가니
밤은 이슥허니 깊어 가고
소금발만 쓰린 바다
늘펀 죽더라

갑자기 온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펑! 우르릉 꽝!
큰일났네 큰일났네
해일이 밀어닥쳐
장명이 원뚝 터졌다네
그 안엣 것 모두 잠기고
예전처럼 질펀한 갯벌로
돌아갔다네
장명이 혼만 삭아 푸석대는 갯벌이 되었다네.




지동환(池東煥)

1920년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추동)에서 출생. 근흥보통학교 3년 중퇴. 소년 시절에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다가 1952년 고향으로 돌아와 태안읍 남문리에 정착. 태안천주교회 최초 신자로서 초석 역할을 했음. 1980년 시집 『長命水散調』를 상재하고, <흙빛문학> 1·2·3집에 상당수의 시 작품과 동화 작품들을 발표. 1984년 <소년>지 11월 호에 동화 「가짜 호랑이」로 신인 추천 (박홍근 천)을 받음.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마당에서 많은 미발표 작품들을 남겨놓은 채 66세를 일기로 1986년 2월 7일 별세. 1993년 유고 동화집 『팥죽할머니와 늑대』가 출간되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1994년에는 유고 시집 『바람 뫼뿐이어라』가, 1998년에는 유고 동화집 『까마귀할머니와 파랑새』가 출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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