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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성인, 나의 신앙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31 조회수673 추천수5 반대(0) 신고

※엊그제(29일) 아침에 '굿 뉴스' 게시판에서 비교적 자주 뵙는 한 분 형제님(아직 '굿자만사' 모임에는 한 번도 참석하시지 않은 형제님)으로부터 '영명축일' 축하 쪽지를 받았습니다. 답신을 드리면서 감사를 표했습니다만, 여기에서도 다시 한번 고마운 뜻을 표합니다.

우선 그 형제님께 드린 제 답신을 소개합니다.

【제 본명축일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수호성인은 확실치 않습니다. '막시모'라는 이름을 가진 성인들이 무척 많은데(가톨릭 굿 뉴스에서 검색을 해보니 무려 20분이나 되더군요), 제가 젖먹이 시절에 전주 전동성당에서 영세를 해서, 어는 분이 제 수호성인이신지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생일과 연관을 지어봐도…. 그래서 아예 막시모라는 이름을 가지신 성인 모두를 제 수호성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불원간 글 하나 써서 굿 뉴스에 올릴 생각입니다.
제 본명축일을 축하해주신 형제님께 거듭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총 안에서 늘 평강하시기 빕니다.

(070530 / 충남 태안 지요하 막시모 절)】


위 답신 글에 적은 대로 오늘 제 본명축일과 관련하는 글을 하나 쓰려고 합니다. 글을 쓰기 전에 제가 1994년(아, 그때가 벌써 13년 전이라니!) <평화신문>의 청탁으로 썼던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나의 성인 나의 신앙


                      
2세기 후반 이탈리아 순교 聖人
                       직접 지은 기도로 주보 성인께 기도와 의탁


내가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님 덕분이다. 나의 부친은 청년 시절에 인생의 참 의미와 목적을 향해 집요하게 길 찾는 공부를 하시며 불교 사찰과 개신교회 등을 전전하시다가 마침내 다다른 곳이 천주교회였다고 한다. 긴 노정 끝에 천주교 신앙의 텃밭에 정착하게 된 아버님은 1949년 성탄 때 온 가족(아내·딸·아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셨다. 전주 전동성당에서였고, 내 나이 두 살 때였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출신으로 8대째 뿌리내려 살던 고향을 떠나 강원도, 평안도 등지를 전전하다 전라북도 전주에 일시 정착, 결혼하여 두 아이를 얻고 천주교 신앙까지 얻은 아버님은 내 나이 네 살 때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당은 물론 공소도 없는 곳에서 신앙의 불씨를 안고 사시다가 56년 태안에 공소를 앉히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 그 당시 태안 읍내엔 천주교 신자 집이라곤 우리 집밖에 없었다.

나는 천주교 신앙을 갖게 해 주신 아버님께 무한히 감사한다. 당신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여 길을 찾아 천주교를 택하고, 천주교 신자로서 착하고 가난하게 사시다가 가신 내 아버님을 기리는 마음은 존경심과 고마움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나에겐 섭섭한 것이 하나 있다. 나의 주보 성인이신 막시모 성인에 대하여 도대체 확실한 사항들을 알지 못하기 까닭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속명이 특이하니까 세례명도 흔치 않은 이름이라는 말을 들을 때 은근히 기분이 좋았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왜 하필 별로 유명치 못한 분이 나의 주보 성인으로 정해졌는지 의아스럽고 서운한 마음이 들곤 했다.

막시모 성인은 교회의 캘린더와 축일표 등에는 아예 이름이 비치지도 않는다. 어떤 책에서도 그분의 삶을 만날 수 없다. 그동안 여러 차례 백방으로 찾아보았으나, 2세기 후반에 사셨던 이탈리아 분이라는 것과 순교자시라는 것만이 내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다. 그리고 막시모라는 이름의 성인은 여러 분이나 되는데, 2월 18일이 축일이신 분을 나의 주보 성인으로 치는 것은 그분의 축일과 내 생일이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세례를 베푸신 신부님도 모르고 대부님도 본 기억이 없고, 수호 성인마저 어떻게 사신 분인지를 모르는 나는, 그러나 내 세례명이 막시모인 고로 확실히 나의 주보 성인이신 그분께 매일같이 내가 지은 기도를 바치며 산다.

"나의 주보이신 막시모 성인이시여, 오늘 또 하루의 삶을 당신께 의탁하오니, 제가 하느님의 품안에서 바르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도록 저를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소서." *  

                                                 (1994년 <평화신문> 2월 13일)


  위 글이 신문에 나간 후 나는 글에 문제점이 하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막시모라는 이름의 여러 성인들 중에서 2월 18일이 축일이신 분을 내 주보 성인으로 치는 이유를 제시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축일과 내 생일이 인접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

내 생일은 음력으로 2월 23일입니다. 내가 영세를 하던 시절에는 음력이 사용되었습니다. 나는 그 사실과 관계되는 사항들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옛날에는 음력이 사용되었다는 것만 생각하고, 내 생일이 2월 23일이니, 막시모라는 이름의 성인들 중에서 아무래도 2월 18일이 축일이신 분을 내 주보 성인으로 삼았을 거라고 '추정'을 했던 것인데, 서양 성인들의 축일은 모두 양력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미치더군요.    

1949년 당시 전주 전동성당 신부님께서 내게 영세를 주실 때 내 음력 생일 2월 23일을 양력으로 따져서 내 양력 생일과 축일이 인접한 막시모 성인을 내 주보 성인으로 정해 주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지요.

내 음력 생일 2월 23일이 양력으로는 1948년 몇 월 며칠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대체로 양력 초순에 해당합니다. 4월 5일 전후에 놓이는 해가 많습니다. 그리고 대개는 사순절 안에 위치하지만 더러는 사순절 밖에 위치해서 주님 부활의 기쁨을 배로 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막시모라는 이름의 20분 성인들 중에서 4월에 축일이 있는 분은 무려 네 분이나 됩니다. 13일, 14일, 15일과 30일이 그분들의 축일입니다. 그래서 내 주보 성인은 4월 13일이 축일이신 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추정일 뿐 확실치가 않습니다. 지금 그것을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음력 생일과 인접한 막시모 성인 축일 2월 18일과 또 양력 생일과 인접한 막시모 성인 축일 4월 13일, 이 두 축일을 내 본명축일로 지내기는 하는데, 그리고 막시모라는 이름을 가지신 20분 성인이 모두 내 주보 성인이시라는 생각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썩 즐겁거나 홀가분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제 본명축일 사정이 이렇습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년에 스무 번 정도 영명축일 축하를 받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합니다. 만약 일년에 스무 번이나 영명축일 축하를 받는다면, 그건 세계 초유의 일이 될 테고, 색다른 기쁨이 될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엊그제(29일/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 막시모 성인 축일) 아침 한 분 형제님으로부터 받은 영명축일 축하 쪽지는 그 사상 초유의 일, 색다른 기쁨의 시작이요, 조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슬며시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엊그제 제게 영명축일 축하 쪽지글을 주신 한 분 형제님께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합니다. 굿 뉴스 게시판의 모든 형제 자매님들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70531 / 충남 태안 지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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