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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황금돼지해’, 학대 당하는 돼지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31 조회수601 추천수4 반대(0) 신고

                                ‘황금돼지해’, 학대 당하는 돼지들

                 돼지에 대한 추억들


    


<1>

아련한 소년 시절의 일이지만, 나는 여러 동물들을 길러본 경험이 있다. 여러 해 동안 닭, 토끼, 염소, 돼지를 길러보았다. '경험'이라는 말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또 그때는 적이 귀찮고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소년 시절에 동물들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을 하나의 '행운'으로 생각한다.

돼지에 대한 추억도 또렷하다. 우리 집은 여러 해 동안 연이어 돼지 한 마리씩을 길렀다. 우리 집과는 좀 떨어진 곳에 돼지 울이 있었다. 우리 집은 집 가까이에 돼지 울간을 지을 여건이 아니었다. 길 건너에 덩실한 기와집이 있었는데, 그 집의 너른 밭쪽 긴 담 모서리에 작은 공간이 있어서 그 곳에 돼지 울간을 하나 짓고 돼지를 길렀다.

우리 집 형편을 돕고자 자기 집 담 밖 모서리에 돼지 울간을 짓도록 허락해 주신 기와집 어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물론 지금은 그 기와집도 없고, 우리 아홉 식구가 살았던 집(태안읍 남문2리 485번지)도 예전에 사라졌다. 그곳은 이제 완전히 딴 세상이 된 풍경이다. 가끔 그곳을 지나는데, 코끝이 맹맹해지는 이상한 현상을 겪는 때도 있다.

아버지는 매번 수퇘지를 선호하셨던 것 같다. 암퇘지를 길러 새끼를 받은 기억은 없다. 새끼 돼지를 길러 100근이 넘으면 처분하곤 했다. 아버지는 동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정성을 들여 돼지를 길렀다. 구정물에 쌀겨를 듬뿍듬뿍 타서 주곤 했고, 구정물 속에 건더기가 별로 없을 때는 내가 잡아온 개구리를 삶아 넣어주기도 했다. 뱀을 잡아서 울간 안에 넣어준 적도 있다.

돼지가 구정물 속에 코를 박고 개구리부터 찾아서 맛있게 먹는 것을 나는 신기한 눈으로 보곤 했고, 거의 흥분 상태로 뱀을 찾아서 정신 없이 먹는 것을 보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돼지도 주인을 알아볼 줄 알고 고마워할 줄 아는 동물이라고 했고, 잘 먹여야 한다고 했다. 잘 먹어야 고기도 맛이 좋고, 우리가 먹지는 않더라도 여러 사람에게 맛있는 고기를 먹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말도 했다.

나는 닭과 돼지에게 주기 위해 개구리며 뱀을 꽤 많이 잡았는데, 그때는 별 생각 없이 그런 일을 했지만 어른이 돼서 생각하니 아버지가 좀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그렇게 어린 아들에게 그런 험한 일을 시키셨는지, 닭과 돼지를 잘 먹이기 위해서 개구리와 뱀을 잡는다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지(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개구리와 뱀도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무거운 짐처럼 안아야 했다.

개구리와 뱀을 잡는 것에 비해 풀을 베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기르는 짐승들에게 주기 위해 종종 풀 베는 일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돼지와 염소와 토끼가 서로 달리 가장 좋아하는 풀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서 막대기로 돼지의 등을 긁어주는 일도 하곤 했다. 돼지는 등을 긁어주면 고맙다는 뜻인지 특이한 소리를 내기도 했고, 누웠다가도 사람이 나타나면 일어나서 등을 돌려대기도 했다.

아버지는 돼지가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자주 울안을 치우고 새 짚을 넣어주곤 했는데, 울안을 치우고 새 짚을 넣어줄 때마다 돼지가 되게 좋아한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돼지 울간을 치우는 날은 돼지가 울 밖으로 나와 운동을 하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울간을 치우는 동안 울 밖에 나가 있는 돼지를 지키는 일은 내 소임이었다. 돼지는 울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코로 땅을 파는 일부터 했다. 새끼 때 울간을 탈출하여 콩밭 속으로 달아나는 녀석을 잡아들이느라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애를 먹은 적도 있는데, 어느 정도 자란 돼지는 울간 근처에서 코로 땅을 파는 일에만 집중했다.

돼지를 기르던 시절에 장만된 여러 가지 삽화들 중에서 가장 명료한 것은 아버지가 돼지에게 손가락을 빨리곤 한 일이다. 아버지는 돼지 등을 긁어주고 나면 돼지 입에 가운데 손가락을 대주곤 했다. 그러면 돼지는 사람의 손가락을 입에 넣곤 젖 빨듯 빨곤 했다.

한번은 어머니가 아버지께 걱정을 했다.

"성질 있는 다 큰 수퇘진디, 그러다가 손가락을 깨물기라두 허면 어쩔라구류."
"괜찮어. 돼지는 영리헌 동물이여. 이 녀석은 사람헌티서 정을 느끼구 살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절대루 읎어."

어린 시절부터 사람 손가락을 빨아버릇해 온 어른 수퇘지와 아버지 사이에는 그런 신뢰의 강이 흐르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호강을 하며 자란 돼지도 어느덧 울간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 그것은 돼지의 운명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른들이 여럿 와서 울 밖으로 나온 돼지의 네 다리를 묶고 큰 저울대에 꿰어서 들어올렸다. 네 발이 묶인 채 거꾸로 들어올려진 돼지는 그러나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았고 발버둥도 치지 않았다.

어른들은 "돼지 한번 순하게 길렀다"느니, "이런 돼지는 처음 본다"느니 하며 감탄을 했다. 그 말은 내 뇌리에 각인이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내 뇌리에 새겨진 그 말이 오늘에도 기억에 명료한 것은, "돼지 한번 순하다"라는 말이 아니고, "돼지 한번 순하게 길렀다"라는 말이 묘미를 안겨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


▲ 지난해 7월 강원도 인제군 가리산리에 폭우로 축사를 잃은 돼지가 먹이를 찾아 마을 인근을 헤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요즘은 돼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 집의 식탁에서도 돼지에 대한 얘기가 벌써 여러 번 화제로 올랐다.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다. 지난 23일 밤 KBS 1 TV의 '환경스페셜'을 통해 우리나라 양돈장의 실태를 접한 탓이고(오늘은 양계장 실태가 방영된다고 한다), 경기도의 한 동네 사람들이 군부대 이전 반대 시위를 하면서 어린 돼지를 찢어 죽이는 초유의 기발한(?) 장면을 연출한 탓이다.

사실은 연초부터, 아니, 지난해 말부터 돼지 생각을 많이 했다. 올해가 '돼지해'라고, 돼지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풍성할 정도로 들었다. '황금돼지해'라는 말도 처음 들었다. 1월 1일 새벽 고장의 백화산 정상에서 열린 '해맞이' 행사에서 돼지가 등장하는 '신년 축시'도 힘차게 낭송했다.

새해 초하루 아침에 백화산 꼭대기에서 올해의 첫 수입인 축시 고료를 받아 챙기며 돼지에게 감사했다. 또 행운권 추첨에서 뽑혀 1돈 짜리 '황금돼지'를 타면서, 돼지해 초하루 아침의 행운에 미묘한 흥분도 담뿍 즐겼다.

그러나 곧 돼지를 잊었다. 올해가 돼지해라는 것도 거의 잊고 살았다. 신년 축시에서는 "돼지처럼 살자/돼지의 느긋하고 푸근한 심성으로 수더분하게 살자"라고 했지만, 느긋하고 푸근한 심성으로 수더분하게 살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돼지들이 양돈장의 비좁은 돈사에서 참혹하게 사육되는 실태와 어린 돼지가 벌건 대낮에 길거리에서 사지가 찢겨 죽는 참상을 보게 되었다. 실제의 돼지들은 인간들의 '돼지해'와는 전혀 아무 관련이 없었고, 인간들의 '돼지꿈'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누구보다도 돼지 삼겹살을 좋아하는 동생은 KBS 1 TV의 '환경스페셜'을 본 다음날 이제부터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자고 했다. 돼지고기 먹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고 했다. 우선 나부터 동생의 그런 제의에 동의했다.

인공 사료와 약물로 길러지는 돼지는 거의 '약물 덩어리'가 아닐까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질병 예방 접종에다가, 이가 잘리고 꼬리가 잘린 다음 감염 예방 백신을 맞아야 하고, 짧은 일생 동안 이런저런 약물과 함께 노상 성장촉진제가 투입되니, 약물 덩어리가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이가 잘리고 꼬리가 잘린 것으로 부족하여 어미와도 일찍 떨어지고, 흙 한번 밟아보지 못하며 몸을 돌릴 수조차 없는 비좁은 우리 안에 갇혀 살아야 하고, 도축장으로 가는 상황에서도 전기 충격기로 재촉을 받아야 하니, 또 완전히 스트레스 덩어리가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약물 덩어리에다가 스트레스 덩어리인 돼지고기를 아무 부담 없이 맛있게 먹기는 정말 어렵다. 그 동안에는 별 생각 없이, 그저 옛날 돼지고기 맛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만을 느끼며 먹어왔다. 그러다가 양돈장의 실태를 접하고 보니, 돼지고기를 먹는 일에서 죄의식도 갖게 될 것 같다.

동물을 동물로 대접하지 않고 오로지 경제적 도구로만 여기는 현상 속에서 사육된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정말 마음 불편한 일이다. 단순히 인간이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거기에는 인간의 탐욕과 무지비한 동물학대 등이 결부되니, 죄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경기도의 한 동네 주민들이 지난 22일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군부대 이전 반대 시위를 하던 중 어린 돼지의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인 일을 접하게 되었다. 기가 막히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사람들의 분별 없음과 잔인함이, 5월이라는 계절과, 또 주민 일부가 착용한 얼룩무늬 군복과 이상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 같은 묘한 아픔도 감내해야 했다.

돼지가 재물이나 복(福)을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인간들의 말놀음일 뿐이다. 명백한 허위의 산물이다. 거기에서도 인간들의 표리부동과 모순과 이율배반 따위를 읽을 수 있다.

동물을 동물로 대접하지 않는 사람은, 또 생명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을 전혀 갖지 못하는 사람은 동물에 관한 좋은 수사들을 입에 담을 자격도 없다. 동물에 관한 좋은 수사들을 입에 올리거나 '돼지꿈'을 소망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이 동물들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조물주의 피조물들이다. 모든 피조물에는 조물주의 창조 의지가 고루 배어 있다. 조물주의 창조 의지는 창조 질서를 형성하고, 그것은 곧 조화를 의미한다. 하찮은 미물에게서도 조물주의 섭리를 느끼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일 수 있다.

앞으로는 돼지를 보거나 음식점에 가서 돼지고기 냄새를 맡을 적마다 양돈장의 무자비한  사육 실태와 아무 죄 없이 사람들에 의해 사지가 찢겨 죽은(가장 참혹한 방식으로 '처형'을 당한) 어린 돼지의 모습, 그 이해할 수 없는 장면도 오래 우울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관련 기사 - '새끼 돼지' 찢어 죽인 퍼포먼스 일파만파

  
덧붙이는 글

어린 돼지 '거열형' 장면 사진을 함께 올릴까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2007-05-30 21:4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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