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04 조회수897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7년 6월 4일 연중 제9주간 월요일
 
 
The stone that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by the Lord has this been done,
and it is wonderful in our eyes?”
(Mk.12.10-11)
 
 
제1독서 토빗기 1,3; 2,1ㄴ-8
복음 마르코 12,1-12
 
남편이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자 아내는 여섯 살 난 딸아이를 보고는 “네가 기도 잘 하니까, 한번 기도해보렴.”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색을 하면서 대답합니다.

“난 뭐라고 해야 하는지 모른단 말이야.”

“엄마가 하는 소리 들었잖아. 그대로 하면 되는 거야.”

그러자 딸은 머리를 숙이더니 성호를 긋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오! 주님, 어쩌자고 이 바쁜 중에 사람들을 불러다가 식사를 대접하게 하십니까?”

똑똑한 딸아이를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려고 기도를 시켰던 것인데, 오히려 망신을 당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이는 딸아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지요. 바로 평소에 자신이 자주 하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부정적인 말마디를 딸이 들었던 것이고, 그 부정적인 말이 그렇게 부정적인 기도가 되었던 것이지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나의 삶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작은 것을 가지고도 크게 쓰시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작은 것을 무시하고, 세속적으로 크고 화려한 것에만 온갖 관심을 쏟아 붇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그래서 점점 주님의 뜻과는 멀어지게 됩니다. 아니 주님의 자리에 내가 올라서려고 합니다. 모든 판단을 나의 관점에서 하기 때문에, 내 안에서 주님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도 너무나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이때 과연 행복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하느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려고 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자연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자연의 모든 것을 인간이 경작하도록 큰 은총을 주셨는데, 우리들은 마치 자연의 모든 것을 직접 창조한 하느님이라도 되는 듯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를 보고도 뉘우치지 않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는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들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포도원 소작인 같이 ‘그렇게 경우가 없는 사람이 있으려고요?’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한다면 우리 역시 그렇게 경우 없는 또 한 명의 소작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하느님의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업신여긴 것, 쓸모없다고 버린 것을 하느님께서는 쓸모 있게 보시고 귀하게 여기시어 긴요한 자리에 놓으신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당시의 지도자들인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볼품없어 보이는 사람들 심지어 죄인이라고 평가받던 사람들이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과연 하느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여 봅니다.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여 봅시다.



승자와 패자('좋은 글' 중에서)



승자는 책임지는 태도로 살며, 패자는 약속을 남발한다.

승자는 입에 솔직이 가득하고, 패자는 핑계가 가득하다.

승자는 넘어진 후 일어나 앞을 보고, 패자는 일어나 뒤를 본다.

승자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패자는 이기는 것도 은근히 염려한다.

승자는 눈을 밟아 길을 만들고, 패자는 눈 녹기를 기다린다.

승자는 돈을 다스리고, 패자는 돈에 지배된다.

승자는 다시 한번 해보자는 말을 즐겨 하고, 패자는 해보아야 별 수 없다는 말을 자주 쓴다
.
 

 

‘This is the heir.
Come, let us kill him,

and the inheritance will be ours.’

(Mk.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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