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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닙니다. - <생각의 게으름>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04 조회수778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위임받은 것입니다.>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마르 12,1-12)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고 친근하게 여기는 캐릭터 상품 중에 공룡이 있습니다. 또 몇 년 전에 공룡에 대한 영화가 열풍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 공룡은 이 지구상에 거쳐 간 생명체 중에서 그 크기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곳곳에도 공룡의 유적지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지구상에 많은 생명체가 살다가 간 흔적이 지층에 남겨진 화석을 통해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 화석 중에서 발견된 공룡은 약 2억 4500만 전에 시작해서 6500만년 경까지 지구에 생존했다고 합니다. 공룡이 생존 했던 기간을 학자들은 중생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공룡은 중생대 시기에만 발견될 뿐이고 마치 갑자기 지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공룡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이 제시되었지만 그 중에서 타당한 설명은 공룡의 몸집이 제한 없이 자라난 것이 이유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 큰 몸집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먹이를 많이 먹어 치워야 했는데 결국 제한 된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는 시기가 이르렀고, 그로인해 지구상에 환경 변화가 생겼을 것이랍니다. 심각한 환경파괴로 인해 커다란 재앙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빙하기가 왔다는 설명이 가장 유력하게 대두됩니다.


  근년에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우려할 만한 기상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지구를 둘러쌓고 있는 대기층에 오존층이 축소되어 태양계에서 들어오는 유해 광선을 차단하지 못해 여러 가지 피부암과 생명체에 돌연변이를 유발합니다. 또 지상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벌써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식통에 의하면 2050년경에는 북극의 빙하가 상당수 녹아내릴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어렸을 때만해도 겨울엔 삼한사온의 기후변화가 뚜렷했으며 거의 한 달여를 한강물이 얼어 얼음지치기를 하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의 기후가 점점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다고 말합니다. 겨울에도 큰 추위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해안에 난류가 유입되어 풍부했던 한류 어자원이 고갈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조만간 지표식물도 난대식물로 바뀔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상합니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가 하느님께서 잘 가꾸고 보존하며 미래의 후손들에게 물려주라고 명하신 이 지구를 마치 우리가 주인인 것처럼 낭비하고 가꾸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일시적으로 위임된 것인데도 마치 우리 차지인 것으로 여겨 영구히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또 줄기세포를 복제하여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많은 교우들마저 그 연구가 성취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를 계산하여 찬성하거나, 반대를 유보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도 줄기세포는 생명이 탄생한 이후 수정난에서 채취하는 것입니다. 자궁에 착상시키고 키우면 한 인간으로 태어날 수정난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비유로 든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는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너무 과장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들 되 돌이켜 보면 예수님 당시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었습니다. 부재지주를 죽이고 땅을 차지하려는 사건이 한 때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사건의 역사성보다 우리가 어떻게 나름으로 재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행히 교회에서 생명 존중 운동과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인으로 행세하려는 몰염치를 깨닫고 소작인으로 살아야만 하는 인간의 한계를 고백하는 가운데 진행되어야 합니다. 당장은 이득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으로 비치겠지만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버린 그 돌을 다시 머릿돌로 삼으실 것입니다.

 

 

 

<생각의 게으름>


  우리는 이 포도원 소작인 비유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비밀을 읽을 줄 알아야합니다. 왜 포도원 주인은 소작인들이 못된 짓을 벌일 줄 알면서도 계속 사자를 보내고, 결국 자신의 상속자인 아들을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결국은 그 상속자가 될 아들을 죽게 만들면서까지 같은 일을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여느 인간 같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빠른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갈라 놓았을 것입니다. 정의를 내세우거나 도덕적 판단으로 결단을 내었을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소작인들이 잘 못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생각해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욕심을 버리기를 바란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소작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길 바란 것입니다.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 번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좀처럼 멈출 줄 모릅니다. 혹시나 잘 못된 길을 걷고 있지 않은지 의심해 보지 않습니다. 그런 경향은 지식인이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를 반추해 보면 인간들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자주 목격합니다.


  인간은 한 번 단순화하여 행동으로 옮긴 것을 저질러 버려야 만족하는 “생각의 게으름”이 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복잡함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선동가 히틀러는 독일인들을 중우화할 수 있었습니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교수들마저 그의 인종 차별적인 캠페인에 적극 찬동하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도 지나치게 단순화된 마르크스 레닌 이론에 넘어가 과연 실제로 유물론이 인간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지 의심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종교가 아편이라는 주장을 한 번도 의심해보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출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라셨습니다. 기회를 주고 또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드님을 희생한 사건 이후에는 어떻게 변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지상에 오셔서 공생활 하시던 때로 되돌아가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귀를 열고 들어 보아야합니다. 아니 지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지 새겨들어 보아야 합니다. 그 일을 이끌어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인간이 내세우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시지 않을 것입니다. 도덕적 판단을 내리신다면 똑같은 일을 반복하실 리가 없으십니다.

 

  우리는 생각의 게으름을 자각하여 언제나 성령께 깨어있기를 간구하여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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