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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72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04 조회수625 추천수10 반대(0) 신고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72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 올바른 영성체를 위한 자기 진단 ◀

우선 나 자신이 어느 수준으로 주님을 모시고 사는지 스스로 진단하여야 합니다.

내가 영성체 예식에 올바르게 참례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방법을 세 가지 단계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판단 방법은 우리 삶에 어떤 큰일이나 고통이 다가왔을 때,

“내 머리 속에 해결책으로 복음적인 대책이 먼저 떠오르느냐?”아니면“세속적인 방법이 먼저 떠오르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 삶의 바탕을 이루는 우선적인 가치 판단으로 무엇을 갖고 있는지 점검하는 작업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몇 달 전에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내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상황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그 문제를“복음적으로 처리했느냐?”아니면“세속적으로 처리 했느냐?”하는 문제가 아니라,“내 머릿속에 어떤 무엇이 먼저 떠올랐느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은 죄악으로 혼탁해서, 그 순간만 모면하려다 보면, 마지막 선택은 복음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러운 세상 속에서도 복음적인 것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불완전하더라도 주님을 모시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꾸 세속적인 것만 떠올라 주님을 모실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인데, 복음적인 삶이 뭔지 머릿속에 영 떠오르지도 않고 분별할 수 없는 수준이라서 근본적인 치유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 첫 번째 판단에서 문제가 발견되는 사람은 두 번째 진찰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당면한 문제를 십자가로 여기고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세속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도피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십자가에 대한 속생각,

십자가를 지는 올바른 자세, 십자가가 부담스러울 때 내 본능적 반응 등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모시고사는 사람에게 현실적인 십자가는 내 주변의 죄악을 뚫고 나가는 아주 유용한 도구나 무기가 됩니다.

이 묘한 일이 가능한 것은 올바른 십자가는 고통스럽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위로가 되고 의지의 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과 인생의 길동무(동업자, 동반자, 동료.)가 되는 삶의 희열이 있는데, 이것이 현실 도피가 아니라는 사실은 구체적으로 처리되는 과정과 신앙적 결실 안에서 현실적으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나는 십자가가 싫다.”,“십자가가 두렵다. 마지못해 지고 있다.”하는 투덜거림 없이 세속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십자가를 선택해야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답습니다.

그런데 질병을 더 악화 시키고 있는 것은 십자가와 복음적 고통이라는 현실을 도피해서 세속적인 방법으로 원래 가야 할 자기 삶에서 계속 빗나가는 악습입니다.

그것도 이런 잘못된 선택을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합니다.

“뭐, 그냥 돈으로 해결하지.”,“이럴 땐, 위에서 힘으로 눌러버리는 것이 제일 빨라.”하면서 동물적인 육감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렇게 살면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데,

우선 삶의 기쁨이나 평화가 없습니다.

또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속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골치가 아픈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골치 덩어리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잠시라도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언제나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세 번째 진단은‘자기 삶의 근본적인 목적과 이유가 얼마나 분명한지’생각하는 일입니다.


내가 왜 살고 있는지, 또 어떻게 살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생각할 때, 거침없이 하느님과 관계된 내용이 떠오르는지 판별하는 작업입니다.

내 삶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근원이 세속적인 야망이나 욕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없이 살았던 옛날이 가슴 깊이 맺혀서 돈독이 올라 거침없이 죄를 짓거나, 아니면 만천하에 호령하는 높은 지위를 탐하는 권력욕에서 떳떳하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불완전하고 건전하지 못한 삶의 이유와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실을 얻는 과정에서 욕구에 대한 갈증만 커지고 무엇인가 제대로 이루었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제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해도 결국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게 됩니다.

“산다는 것이 다 그렇지 뭐!”하면서 자주 한숨을 쉰다든지,‘인생무상’이나‘삶의 회의’같은 말에 자꾸 동조하게 되는 것은 주님을 모시고 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헛갈리는 삶에는 참된 기쁨이나 평화가 없습니다.


반면에 하느님과 관계되는 욕구들은 종류가 다릅니다. 

영성체로 예수님이 된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과 은총에 의지하기 때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습니다.

또 자신은 그분의 도구이기 때문에 자기의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채워주시는‘삶의 여백’이 있기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도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런 거룩한 변화는 사제인 저에게도 숙제처럼 느껴지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사를 통해 예수님으로 살려면 신앙인이라면, 이것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거룩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영성체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73회: 주님의 기도로 이어 집니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 주임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


                                               

 

    

                                          

                                              [기쁨과 평화 넘치는 곳: 가톨릭성가 68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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